아침부터 소나기가 내리고 있습니다. 모처럼의 식사모임으로 후배 동역자 부부들과 화기애애한데 천둥번개와 함께 식당이 깜깜해졌습니다. 정전? 얼마 만에 써보는 단어인지요. 처음 부임한 지역은 겨우 전기가 개통된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교회는 기본적인 시설뿐이었습니다. 지금은 보기도 힘든 백열등이 드문드문 달린. 그런데 그때는 왜 그리 정전이 잦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우울해집니다. 그나마 두꺼비집에 있는 휴즈가 끊어진 경우는 그럭저럭 대처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전화가 없으니 한전에 문의해 볼 수도 없고! 그래서 유비무환 有備無患, 해야 하는 수고가 창고에 버려져있던 석유램프를 잘 손질해서 놓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 그 창고는 예배당 뒤편 음습한 곳에 화장실과 함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장이 높지도 크지도 않은 창고 선반에는 언제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상여 喪輿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습한 창고에는 푸세식 화장실의 고유한(?) 냄새가 언제나 찾는 사람을 반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어려서부터 새 鳥가슴이라 마을에 초상이라도 나면 잠을 설쳤던 전과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창고로 후레쉬를 들고 램프를 가지러 가는 제 표정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시지요.

그런 제게 엄청난 일이 터진 것은 끔찍할 만큼 무더웠던 그해 여름이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사람은 없고 월정헌금 봉투 하나만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력(?)이 부족한 초짜이다 보니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봉투 주인은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봉투의 주인공인 노인 집사님이 며느리와 싸우고 없어져 며칠째 난리라는 것입니다. 순간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헌금봉투를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연말까지의 월정헌금이 들어있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 그 교회의 유일한 집사님이셨던 80세 노인은 나무에 목을 맨 채 부패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가슴은 뛰고 하늘은 노래졌습니다. 그 분이 불쌍해서요? 집사가 자살했다는 분노 때문에요? 내가 목회를 잘못했구나 하는 자괴감에서요? 아닙니다.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해당되었다면 지금까지도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저 겁이 났습니다. 두려웠습니다(그 때까지 한 번도 시신을 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제 염 殮도하고 장례식도 해야 할 텐데, 더구나 시신이 많이 부패했다는데. 장년 교인들도 거의 없고,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 와중에 하필이면 어려서 수없이 보고 들은 귀신이야기는 생각이 나는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정말 다급하면 기도조차 쉽지 않음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 분명 제게는 기적이었습니다. 외지에 나가있는 고인의 작은 아들이 저녁 늦게 찾아왔습니다. 그 분이 무슨 일 때문에 왔겠습니까? 저를 찾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제 가슴은 쿵쾅거리다 못해 멈춘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전도사님. 죄송합니다.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제 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다음 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아는 상식으로는 자살한 사람은 교회에서 장례식을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어머님을 생각하셔서 기도나 한번 해주세요. 다른 것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전도사님께 무리한 부탁이지만 꼭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너무 의외의 말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만 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거절의 뜻으로 알았든지 다시 사정하듯 정중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스타일 구기지 않고(?)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산골마을에서, 그리고 중소도시와 대도시에서 목회를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때는 밤샘도, 염도, 발인과 하관도 그리고 상여 인도까지 목사의 몫이었지요. 그런데도 별 문제없이 다 감당했습니다. 마지막 가는 고인의 얼굴을 거리낌 없이 쓰다듬을 정도로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지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너무 두려워 떨지조차 못했던 제가 어떻게 사연 많은 그 많은 장례를 치룰 수 있었겠습니까? 가끔 생각합니다. 나를 택하여 부르신 분이 새 鳥가슴을, 새 新가슴으로 만드셨다고! 그래서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