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국민이 지도자들의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한다면 몇 점을 줄까, 생각해봅니다.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을 듯싶습니다. 왜냐하면 위기관리 능력 이전에 위기의식이 분명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이 위기라 하여 이른바 ‘북핵 위기’라고들 말합니다. 그것을 두고 위기라 하는 데는 거의 보편적으로 인식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하여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태도와 입장이 국민에게나 세계에 석연치 않게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핵 위기’보다 더 우려할 만큼 심각한 위기는 ‘의식의 위기’요 ‘지도력의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길 바랄 사람이 없고,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을 반대할 사람이 국민 가운데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확고한 토대 위에서 지도자가 북핵 위기에 대하여 결연한 의지와 확고한 태도를 보여야 할 텐데 우유부단한 모습이나 임기웅변 식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국민은 불안과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도력의 위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성서는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나 국민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증빙전 proof-text’의 방법으로 읽으면서, 아전인수격으로 읽지 않고 ‘단서전 clue-text’의 방법으로 읽으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사야 30:15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역시 핵심은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생각과 입장을 정리하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맑은 정신으로 분석하고 인식할 때 비로소 잠잠할 수 있습니다.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내려놓고, 견강부회하면서 고집스럽게 사태를 보고 습관적으로 해석할 일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의식하며 분석해야 합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해야 합니다. 위기 앞에서 이것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더 큰 위기를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조성한 사람들에게 확연한 자세와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므로 뒤따르게 될 더 큰 위기를 예견치 못하는 것이 바로 ‘의식의 위기’입니다.

타당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 바로 의식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요, 바르게 관리하는 길입니다. 맹목적으로 동맹을 의지하며 스스로 약해지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위기를 조성한 쪽을 두려워한 나머지 심리적으로 도피하는 것은 더욱 문제입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 dangerous opportunity’로써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현상입니다. 바르게 인식하고 대처하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카이로스 kairos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고좌면하거나 우왕좌왕하거나 무원칙하게 행동하면 크게 손상을 입거나 커다란 대가를 지불해야 할 불행한 사태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위기의식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는 데 있습니다. 위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crisis는 헬라어 krisis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뜻은 심판입니다. 위기는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심판하는 것이요, 그것은 곧 역사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북핵 위기’도 이런 뜻에서 우리 지도자와 국민에게 심판과도 같습니다. 모두가 ‘잠잠하여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을 토대로 중심을 잡고, 객관적 의식을 갖추어 중론의 일치와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만 하면, 위기를 조성한 쪽에서도, 그로 인하여 압박을 가하는 쪽에서도, 그것을 빌미로 또 다른 위기를 획책하려는 쪽에서도,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고, 그들 스스로 두번 세번 다시 생각할 것입니다. 영성의 눈으로 보면 위기는 의식의 흐름이 왜곡되고 요동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중심을 잡고 객관적 의식을 지니며 잠잠하는 것이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