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운 목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1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받은 후학들은 요즈음 들어 지난 1년 목사님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공동체성서연구와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을 하면서 떠오르는 질문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그 대답을 풀어줄 안내자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겠습니다. 스치듯 지나가며 던지는 한 두 마디의 말씀이 머리를 탁 깨우치고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던 순간들이 그립습니다.

목사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말씀과 기도, 깨달음, 초월 혹은 기타 영성과 관련된 질문과 대답보다는 어디에 정말 맛있고 값싼 음식들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식으로 먹는지, 또 때론 그 음식에 얽혀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럴 때 목사님은 정말 빛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목사님에게서 그럴듯한 영성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니어그램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금에야 깊이 깨닫게 되는 건, 음식이야기가 진짜 영성이야기였다는 사실입니다. 진짜 영성은 삶에 육화된 영성이요, 일상의 이야기가 가장 온전한 영성이야기라는 사실을, 목사님은 음식에 빗대어 일깨워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성이 깊어질수록 우리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두 발을 더 굳게 디디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삶은 그것이 아무리 절망스럽다 해도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선물이요 축복이며, ‘Each day a new day, Each day a new life./ 나날이 새날이요, 나날이 인생이다’라는 사실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서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소림사의 진짜 고승이 주방에 숨어있었듯이, 진짜 스승은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목사님께서는 그렇게 우리 곁에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습니다. 목사님은 늘 한국 사회와 오늘의 현실에 대해 깨어있었습니다. 특히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안목은 탁월했습니다. 정치의 후진성, 자본의 천박성 때문에 이 땅의 백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걱정하셨고, 지도자들이 먼저 영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통찰하셨습니다. 정치인들에게 웬 영성이야기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인류가 영적으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그것을 알고 계시기에 목사님은 자신의 빛을 비추고 그만큼이라도 세상이 환해지기를 간절히 바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후배들은 ‘일 중독’이라며 좀 쉬시라고 말씀드리곤 했지만, 목사님은 일이 곧 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열심히 일하셨고, 그런 모습이야말로 드러나지 않는 영성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사님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모습입니다. 씨름으로 다져진 단단한 어깨를 웅크리고 한결같은 자세로 앉아 계시던 모습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왔는지를 지인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 성실함이야말로,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인 제게는, 하나의 표상이었습니다.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햇순이 228호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목사님의 성실함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목사님은 쉼 없이 공부하며 새로운 책과 연구 자료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연세가 되어서도 누구보다도 독서량이 많으셨고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셨습니다.

이런 성실성은 영성가로서 자기관찰-자기이해-자기변화를 위해 애쓰고 고민하시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참 어린 후배들이나 혹은 어린아이들에게도 목사님은 자신을 솔직하게 여셨고 어린아이들도 ‘두꺼비 할아버지’ 목사님을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었던 목사님을, 저는 참된 에니어그램 영성가라고 봅니다. 구르지에프가 말했던 인간의 본성 Essence은 6세 전후에 성장이 멈추고 거짓인성 false Personality이 자라는데, 어린아이다움은 성격대신 본성이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수함과 천진함으로 목사님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게 되셨습니다.

을미년입니다. 쉽지 않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한다면, 우리 본성을 깨닫고 거짓 인성대신 참된 인성 true personality을 양육한다면, 고난을 통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목사님께서 꿈꾸셨던,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