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생각합니다. 어둠이 점점 깊어 오고 오로지 희망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금, 믿음은 더욱 간절합니다.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현 정권이 국면을 전환하고 권력을 다시 잡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 할 터인데, 그것이 혹시 국지전이나 북풍, 혹은 비상계엄 같은 매우 위험한 선택은 아닐까 우려됩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나는 대통령 주변 실세들의 온갖 부정과 비리,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정기관들, 그리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처럼 매카시즘적 이념 공세가 점점 이런 우려를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상식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가치가 아닙니다. 온갖 편법과 부정, 탐욕과 전쟁 같은 경쟁만이 살길처럼 행합니다. 세월호,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보듯 사람은 없습니다. 가진 자와 개돼지 취급받는 가지지 못한 자들만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부모의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불공정한 대입 게임과 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이미 아이들은 지칠 대로 지쳐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 아이들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예수는 불의한 재판관과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누가 18:1-8)를 전해줍니다. 이 이야기는 불의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난하고 억울한, 그러나 죄 없는 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통치하는 세상이지만, 끝까지 선하고 의로움을 지키라는 착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 멸망한 것처럼,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죄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의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8절)는 말씀처럼 깨어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보는 너, 내가 보는 세상, 내가 보는 우주, 이 모든 것이 내 에고의 투사이며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둠이 깊은 것은 내가 무지와 탐욕으로 깊이 잠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남을 바라보고 남을 탓하는 분별심의 세상에서는 연꽃이 피어나지 않습니다. ‘나를 들여다보니 알겠구나, 왜 세상이 이리 어두운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욕심 사나운지, 왜 이렇게 천박하고 몰인정하고 잔인하고 조급하고 좁아졌는지. 언제 이렇게 사람의 향기는 사라지고 썩은 내만 나는 어둠의 자식이 되었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천박한 물신숭배자로 만들었을까요? 에니어그램은 인간을 수천의 거짓 에고에 둘려 쌓여 참 나를 잊어버린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거짓 에고가 만들어내는 환상에서 깨어나 본래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할 때, 비로소 참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어두운 현실은 욕망과 수치심,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힌 우리들의 에고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인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두려움이 불통을 만들고, 정치인들의 오만과 탐닉과 분노, 경제인들의 탐욕과 기만, 수많은 시민들의 게으름과 인색함이라는 격정들이 서로에게 자양분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현실인 것입니다. 불건강한 방향으로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을 건강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이런 영적 흐름을 보고 각성하고 깨어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각성과 깨달음은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 transformation하는 것처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어 세상 안에 살되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하여, 구르지에프는 이를 제4의 길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불의한 재판관을 심판하는 대신 착한 과부에게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아닐까요? 나 하나가 깨어있으면 온 세상이 밝습니다. 이것이 영성의 길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낙담대신 영적변형을 위한 기회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