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을 걷는, 빛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의지하여라.”(사50:10)

살면서 누구나 한 두 번은 삶의 바닥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 문제에 붙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길은 보이지 않아 매일 매일이 고뇌와 한숨뿐인 그런 시간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몇 차례 그런 삶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1980년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되었던 사건입니다. 당시의 충격은 그동안 제가 가졌던 신앙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는 물음, ‘하나님은 정의로우신가?’에 빠지게 했고, 제대 후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내내 저의 신학적 주제가 되었습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 함께 하면서 우리 사회의 불의와 가난한 민중들의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는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를 욥처럼 하나님을 향한 질문과 비난으로 계속하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얘야, 너처럼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도 민중의 고난을 아파하지 않느냐? 하물며 사랑인 내가 그들을 내버려두겠느냐? 나는 그들과 함께 고통 받고, 그들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 마치 천둥번개처럼 저를 쪼개고 들어오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 대해 처음으로 교리적인 이해가 아닌, 실존적인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내가 시한부 삶의 판정을 받고 투병하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과 불평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왜 더없이 착한 저 사람을 데려가려 하십니까? 차라리 날 데려가시오. 저 사람은 안 됩니다!” 기도와 명상 속에서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니, 질문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또 깨달음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너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한결같은 완전한 사랑으로 너희와 함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어두운 장막이 걷히듯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아,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통 중에 죽어가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걸어갑니다. 모두 죽음을 선고받은 시한부 인생을 삽니다. 죽음을 향한 삶은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요즘 7개월 난 제 손자가 일어서려고 침상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버티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넘어지고, 끝없는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아기는 매 순간 사는 것이 고난이구나 싶습니다. 넘어지고, 울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그럴 때마다 옆에서 손을 뻗고 지키고 바라봅니다. 그러다 깨닫습니다. 하나님도 이처럼 우리를 돌보시겠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라고 손을 뻗고 잡아주려고 하시며 스스로 일어나기를 응원하시겠지. 넘어지지 않으면 일어서는 법을 배우지 못하니 넘어짐은 성장과정의 필수요소인 것을.

우리는 고난과 실패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질주의의 영향일 것입니다. 영성적 관점에서는 고난은 성장의 필연적 조건일 뿐입니다.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어려움을 당할 때도 기뻐하라는 사도들의 가르침은 이렇게 큰 주님의 사랑의 경험에서 주는 것입니다. 실패와 고난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발견한다면, 그 삶은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반면 성공과 편안함 속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은 줄어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합니다.

다시 강림절기가 시작됩니다. 주님을 향한 기다림이 얼마만큼 간절합니까? 로또만큼 간절합니까? 자녀의 대학입시만큼 간절합니까? 무엇에 비교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비교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버킷리스트 bucket list의 목록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니까요. 신앙생활은 내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의 장식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우리 부모님들이 모진 고난 속에서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찾던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물질적으로 편안해진 그만큼 우리들의 신앙적 열정은 줄어들었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삶의 목적과 목표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목적이고, 하나님과의 일치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숨을 깊이 들이쉽니다. 숨을 내쉬며 내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다시 숨을 쉬며 하나씩 나를 비웁니다. 그렇게 비우고 비우다보면 온갖 근심걱정은 물러나고 환한 빛이 내 마음을 채웁니다. 내일의 염려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나를 큰 품에 가득 안아주시는 주님의 충만한 은총을 느낍니다. 이 순간 나는, 완전한 사랑 안에서 완전합니다.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 1순위는 언제나 주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