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창2:10)

얼마 전 산책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처럼 냇가를 따라 걷고 있었고, 약간 더울 만큼 햇볕이 내리쬐고 사람들도 여기저기 걷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심히 그 광경을 보며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습니다. 내가 걷는 길만 환한 빛 속에 곧게 뻗어있고, 주변의 풍경들은 마치 사라져버린 듯 내 감각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움이 밀려왔습니다. 그 길에, 그 순간, 나만 홀로 있었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던 누군가의 순간이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을 만큼 강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늘의 소리가 임한 것처럼 깨달았습니다. “인류는 멸망하지 않는다. 인류는 물질문명의 총체적 난국에서 영적진화의 길을 찾아내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새로운 영성의 시대가 열린다.”

이 생각은 어떤 확신처럼 내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질서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역사적, 인류학적,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 견해에 대해 저도 동감합니다. 그러나 저의 동감은 좀 더 신앙적, 체험적, 영성적 통찰에서 온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확신이지만, 특별한 경험이기에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노자는 상도 上道, ‘길 위의 길’을 말했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의 에고가 바라보는 삶이 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참 나’가 바라보는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습관적으로 운명처럼 에고의 욕망이 춤추는 환상의 세계에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매 순간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이 길 위의 길, 길 속의 길이 진정한 실제의 세계라고 수많은 영성가들이 가르쳐왔습니다. 우리 인류가 밭에 감추어진 보물 같은 이 길을 찾아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국민재난 기본소득 지원금>은 변화될 시대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예고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재난지원금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자리는 인간에서 기계로 대체될 수밖에 없어 노동력을 통한 생산과 그에 따른 수입창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시스템이 돌아가려면 소비를 보장해 주어야하기 때문에 생산은 기계가 하고 인간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소비를 보장받는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묻게 됩니다. 생산하지 않는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 인류가 할 노동은 무엇이 될 것인가? 저는 그 미래에 가장 중심 되는 단어가 ‘창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적 노동’이라고 할까요? 인류는 비로소 진정한 삶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의 인간 아담에게 피조세계를 관리 보존토록 위임하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작업에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그 창조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에의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에 향기와 빛깔과 의미를 부여하는 생명에의 창조입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인간의 참여에 의해 하나님의 창조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중에서)

여전히 우리 인류에게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창조를 완성해야 할 사명이 주어져있고, 진화는 그 완성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미래의 인간의 노동은 이렇게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이름을 불러주는 창조 작업이 될 것입니다. 생명의 파괴와 멸종이 아닌 돌봄과 보존으로 가야합니다. 이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서로가 되기 위해 고요히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