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년이 할아버지는 나무같은 사람입니다.
“저 나무를 보세요. 나무에 비하면 사람이 하는 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알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늘상 하는 말이지요.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무와 풀이에요.
할아버지는 나무와 풀을 구경하기 위해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시지요.
지리산, 덕유산, 설악산 같은 유명한 산뿐 아니라 야산이며 들도 돌아다니시고, 광릉 수목원이나 청량리 임업 시험장, 창덕궁이랑 창경궁도 가 보셨대요.
최근에는 나무와 풀 이름, 그것들의 성질을 정확히 알고 싶어 멀리 서울까지 가셔서 식물 도감까지 구해 오셨대요.



“저 나무를 가만히 보아라. 인간과 동물은 무섭게 먹어치우기만 하고, 기계가 만들어 낸다지만 실은 바꿀 뿐인데, 나무나 풀은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또 새롭게 만들어 가지 않니?”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때도 있어요. 언년이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지만요.
“이걸 봐라. 지난 봄에 여긴 아무 것도 없었잖느냐? 그런데도 흙을 파고, 씨를 뿌리자 싹이 나오고 꽃이 피더니만 콩이 이렇게 열렸구나.”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저쪽 산도 마찬가지란다. 전쟁이 지나간 후,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단다. 폭탄에 맞아 타 버리고, 사람들이 베어 가고, 자갈만 굴러다녔지. 잣나무를 심었더니만. 이젠 제법 잣도 열리고 새들도 날아와 사는구나.”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낡은 기와집에서 혼자 살아요. 아들딸은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할머니마저 딸네 집에 가서 살아요.
논농사는 힘에 겨워 남을 주고, 콩, 팥, 도라지, 호박, 율무, 수수, 차조 같은 품이 덜 드는 농사만 직접 짓지요.
오늘도 할아버지는 콩밭을 매러 나왔어요.
흐르는 개울물에 옷가지를 대충 헹궈 널고, 콩이랑 팥, 차조와 보리에다 쌀을 조금 섞어 지은 잡곡밥을 바구니에 담아들고 된장을 한 숟갈 호박잎에 싸 가지고 콩밭으로 나왔어요.
언년이도 물론 따라 나섰지요.
할아버지는 밥도 혼자 해 먹고 빨래도 스스로 해요.



그렇지만 힘이 안 드는 것은 잡곡밥에 찬 한 가지, 김도 생으로 먹으니까 불이 많이 필요 없기 때문이지요.
밥 한 톨, 국물 한 방울 안 남기니까 매번 설거지할 것도 없고, 빨래도 합성 세제는커녕 비누도 쓰지 않고 흐르는 물에 대강 헹구어 널었다가 입어요. 이렇게 사니까 쓰레기도 안 나오지요.
“저 나무를 보세요. 무엇 한 가지 쓸데 없는 것 세상에 떨어뜨리는가. 사람이 나무처럼이야 못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살아야지요.”
도시에서 손님이 왔을 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할아버지는 과일도 껍질째 먹는다구요. 껍질에 영양분이 많대서가 아니라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고요.
과일 씨도 꼭꼭 씹어 먹어요. 포도 씨만 빼구요. 포도 씨를 씹어 먹으면 혓바늘이 돋는대요. 그렇지만 씹지 않고 삼키면 괜찮대요.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봐요. 가끔 서울서도 손님이 오세요.
“저 겨울나무를 보세요. 춥고 먼길을 가자니까 될 수 있는 대로 가벼운 몸가짐을 하느라고 잎을 다 떨궜지요. 간편해야 몸이 더 단단해지거든요. 사람은 그런데 그런 지혜가 없어요. 자꾸만 치장하고 뭘 지니려 해요.”
지난 겨울, 눈이 많이 내렸을 때 그 눈길을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들에게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언년이는 그 중 한 사람 얼굴이 발개지는 걸 놓치지 않고 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