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우리 엄마, 엄마는 우리 1남 7녀에게 여름마다 채송화 길을 걷게 해주셨고, 매일 늦은 밤 일기를 쓰십니다. 일흔 즈음에 우리들의 얼굴을 색연필로 처음 그려주셨고, 엄마의 꽃밭, 옛 시절들을 그리고 계십니다. 우리 여섯 자매는 인사동에서 공방을 하고 있답니다.”

지난 15년 동안 “이쁜 엄마”는 딸이 사다 준 도화지와 색연필로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렸고 또 이쁜 딸들은 이쁜 엄마의 이쁜 그림들을 묶어서 카렌다를 만들었다. 그리고 공방에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차를 나누며 “우리엄마 모습이예요” 하며 살며시 앙징스런 탁상용 카렌다를 선물이라고 내민다. 한달, 한달 넘겨보면서 색색으로 채워진 마음과 표현은 13장의 화사하고 정겨운 그림들이 되어 엄마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느끼게 한다.

“엄마, 그리고 싶은 거 있으면 그리세요.”

“내일은 팔월이다. 우리 넷째가 도화지를 사다줬다. 나는 고마웠다.”

“누가 날 이리 좋아하나요?, 자식밖에 없지요.”

“우리 집 셋째 딸은 누구보다도 생활력이 강하고 마음씨가 착하다. 이해력도 넓다. 손재주도 있다.”, “우리 막내딸은 언제보아도 침착하다.”, “꽃들이 날 반겨준다.”, “누굴 위해서 꽃은 피나요. 고맙다.”,

“자식이 무엇인데 오면 좋고, 가면 서운한지요?”, “누군가 보고 싶다.”, “엄마, 장에 갔다 올게.”, “밥 먹고 가거라.”

꽃과 나비, 새와 나무, 집과 화단, 아이들과 강아지, 딸들을 그려 놓은 화사한 장면, 장면들은 달마다의 장을 넘길 때, 솜씨 좋은 이쁜 엄마의 살가운 마음이 그대로 보여 지고 있다.

노년이 깊어갈수록 그 엄마는 자신의 가슴속에 숨어있던 열정이 딸이라는 세상을 향하여 꽃이 되어, 나무되어, 새가 되어 엄마꽃밭에서 그냥 피어났다. 엄마의 삶은 가정으로 충분했다. 그 엄마의 가정이 바로 세상이었으니까! 그 세상으로 피어 나온 열정은 삶의 향기가 되어, 불꽃이 되어 이쁜 딸들의 삶을 넘어 주변을 온통 달구는 또 다른 이쁜 엄마로 살아나고 있다.

교회활동 간간이 신학공부를 하여 자신이 살아야하는 신앙적 헌신의 삶을 찾으며, 시민운동에 깊이 몸 담아왔던 박김 권사는 교회에서 여전도회협의회회장이 되었다. 호주제 폐지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깨달은 것, 살과 피, 자궁과 생명을 준 그 엄마를 몸으로, 삶으로 함께 사는 것은 엄마의 성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 단언하여 “박김” 권사가 되었다. 나이 70을 바라보며,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앞둔 권사직의 마지막 봉사를 위해 온 정열을 다 쏟고 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옷에 맞추어 모자를 쓰는 패션감각, 이것도 다른 이들을 즐겁게 하는 자신의 비법이라고 했다.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모자가 참 잘 어울리는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일단 모자부터 보게 된다. 그리고 그날의 주제를 서로 맞추려고 수선스러워진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나타남에 일단 분위기가 달라진다. 가냘픈 몸에서 나오는 표현은 온통 유머로 넘친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등단하여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이 쌓이면서 시간가는 것이 몹시도 아깝다고 하더니, 고희를 기해서 발표하려는 작품에 마지막 손질을 끝냈다고 너무나 즐거워한다. 나이 듦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끊임없는 내적 의욕과 열정은 파장을 일으킨다. 회원 수련회에서 자청했다는 강의는 역사를 바라보는 여성주의 관점을 회원들과 공감하고 설득하는 역사의식으로, 삶과 경험의 흔적들로 진솔하게 묻어나왔다.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는 정신대문제 대책에 수많은 세월을 쏟아도 그 끝이 안보여 안타까워하는 분노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녀가 보여주는 지도력은 함께하는 회원들에게 여성으로의 자존심과 용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하는 역사의 도전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다시 치유하고 위로로 거듭나는 미래이고, 희망이다. “여성의 힘”은 함께하는 잠재된 지도력임을 확신시킨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말을 빌려, 결국은 불살랐던 삶이 빛을 낼 수 있었다.

불살라서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었던 여성들의 힘, 역사 속에 묻혀버린 여성들의 삶의 흔적에서 우리는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교훈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호주제가 철폐된다. 가족법개정운동을 시작하여 48년 만에 이루어진 역사의 새 장을 정녕 맞게 되는 것인가? 자유, 평등, 민주주의가 가족생활에서 추구되어야 양성 평등한 조화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되는 것, 양성평등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평화로운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지난 세월동안 137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는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부당하게 외면당하고 슬픔을 겪으며 소수자로, 약자로 살아야했던가!

우리가정은 우리가 살려낼 것, 그 열정으로 성 평등의 새 지평, 여성의 인간화를 마침내 이루어냈다.

그 열정으로 역사를 바꾸고, 행복을 노래하는데 빙산9각에 가려졌던 지칠 줄 모르는 수많은 여성들의 여정을 결코 놓칠 수가 없어서 오늘도 이쁜 엄마들을 찬미한다. 이 삼월의 햇살은 봄의 대지를 또다시 설레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