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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경부선 C역 근처에 국밥집이 하나 있는데
가게 주인 양순 씨는 병신 딸 춘자 씨와
평생을 함께 산다.
국경 아닌 국경이요, 경계 아닌 경계로다.
잇속없이 서로 다치고 죽이는
전쟁에 휩쓸리고,
병신 딸 다시 못보고
38선이 변하여 굳어버린 휴전선,
고향에 다시 못가고
어쩌다저쩌다 국밥집 주인이 된 양순 씨,
식모살이 30년에 사장님 되었구나.
양순 씨 거동보소,
자나깨나 밤낮없이
누구를 기다리나,
손님을 맞다가도 창문밖 내다보고
기차 떠나는 소리에도 먼 하늘 바라보고
바람 부는 소리에도 문 열고 내다본다.
지나가는 노인네 불러 국밥 한 그릇 대접하고
찾아오는 걸인 맞아 국밥 한 그릇 퍼내놓고
그렇게 사는 동안 20년 세월이 또 흘렀구나.

어느 날 한밤중에 비바람 부는 소리
문 열고 내다보니 병신 딸이 게 있구나.
이것이 웬일인가, 어디갔다 이제왔나
늬가 여기 웬일이냐?
어서, 불러 밥 먹이고 젖은 옷 갈아입히려
헌 옷가지 찾아오니 아이가 가고 없네.
꿈인가 생시인가 어느 날 한밤중에
눈보라 치는 소리 문 열고 내다보니
병신 딸이 또 왔구나. 어서, 불러 밥 먹이고
등 뜨신 옷 챙겨주려고 방에 들렀다 나와보니
이 녀석 또 어디 갔는가.
생시던가, 꿈이던가 그 후부터 날만 궂으면
자다가도 문여는 버릇,
다시는 잠못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오매불망 기다려도
다시 오지 않았구나.

그러다 어느 해 봄날, 꽃피고 새 우는 아침
유채꽃 한가지 꺾어 귀뒷머리 장식허고
게같이 옆걸음 걸어 큰 아기 또 찾아왔네.
국밥 한그릇 비우더니
건져놓은 돼지 뼈다귀
양손에 하나씩 들고
문밖으로 나가는구나.
거기 밖에 뭬 있는고?
뒤따라 내다보니
외눈박이에
세발강아지
갖가지 병신 개들
거렁뱅이 어미마냥
거느리고 다니는구나.
그게 하도 기특하여
뼈다귀 모아놓고
어느새 기다리는데
다시가고 아니오네
한 해가 지나가고
이듬해 봄날 아침
그날은 웬일인지
들어단짝 팔걷어부치고
자숫물에 손담그고
물행주 비틀어짜더니 식탁을 닦고 있네
물끄러미 바라보다
네가 바로 내 딸이로다
그날부터 아예 양딸로 받아들여
평생을 함께 산다!

내가 개를 좋아하는가,
늬가 개를 좋아해선가
모녀 서로 아니라면서 떠돌이 개도 불러들여
뼈다귀 물려주고
괴기국물 부어주고
그러자니 온갖 개들
검둥이 흰둥이 모여들어
개판이 되었구나.
뒷곁마당 널리 치우고 유기견들 모아 키우니
춘자 씨는 개어미요, 양순 씨는 개할미라,
어느 날 양지쪽에 모녀 마주 앉았는데
늬가 내 친딸이냐 내가 늬 친어미냐
양순 씨 묻는 말에 웃기만 하는구나.
웃는다는 게 돌아간 눈이 더
돌아가는 것 같아 가슴 아파,
“얘야, 내가 널 거두니 어디선가 마찬가지로
고향에 두고 온 내 딸도 그 누군가 거두겠거니,
내 마음 비워선가,
나이가 들어선가
내 맘이 편안쿠나!”
양순 씨, 춘자 씨 머리 쓰다듬는데
춘자 씨 두 눈에 눈물이 도는구나!
그 모습 병신 개들이 모두
물끄러미 보는구나.

경부선 C역 근처에 국밥집이 하나 있는데,
주인 할머니 양순 씨는 병신 딸 춘자 씨와
평생 길을 함께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