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물고기들이 흐르는 물을 거슬러오르고 가을이면 봄에 오른 물고기가 여름 내 살이 쪄 물길을 타고 내린다. 햇살이 눈부시게 가늘어지고 볏낱이 탱글탱글 영글 무렵이면 무논의 물을 천천히 뺀다. 초저녁별이 떠오를 때 쯤 논둑길을 거닐다보면 손바닥 만큼씩한 뭍게가 기어나와 거품을 뿜으며 밥을 짓는다. 게가 내리는 철이다.
논둑에 초막을 지어놓고, 물꼬에 바지게를 세워놓고 순덕이와 나는 내리는 게가 바지게로 기어오르기를 기다린다. 등불을 걸어놓고 홑이불을 귀접어 둘러쓰고 밤이슬을 맞으며 내리는 게를 기다린다. 별이 머리위에 내려온다. 커다란 뭍게가 물길따라 내려오다가 엉금엉금 바지게 싸릿대를 타고 기어오르면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양동이 속에 넣는다.
으스스 춥다.
“이 놈이 밥도둑이야. 이 놈을 쑤세미로 깨끗이 씻어 질동이에 넣고 간장을 끓여 식혔다 붓는다구. 서너번 그렇게 장을 끓여 식혔다 부어놓고 납작돌을 눌러놓으면 게장이 되는겨. 그럼 그 게딱지 하나로 보리밥 한 사발 뚝딱!”
순덕이가 양동이 속에서 게를 한 마리 집어 들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나는 순덕이 곁으로 다가 앉는다. 순덕이도 내 곁으로 붙어앉았다. 순덕이가 내 허리를 감싸안는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순덕이 어깨 위에 살그머니 고개를 놓는다. 순덕이가 아예 자리 편하게 앉더니 내 머리를 자기 무릎으로 받아 안는다. 잠결이지만, 나는 그걸 알면서도 그냥 잠든 척 한다. 그러다보면 그냥 잠든 적도 있었다.
둠벙에서는 잉어가 튀어오르며 달빛을 깨뜨리고 순덕이는 내게 군인잠바를 덮어주었다.
갑자기 고모 생각이 났다.
“……글쎄 그 사람을 저수지 둑에서 만났지 뭐니. 난 일찌감치 설거지를 끝내구 뒷간에라두 가는거 마냥 시치미 뚝 떼고 아버지 헌 고무신 질질 끌며 사립문을 나섰지 뭐. 속옷은 아침나절에 벌써 갈아입었지. 그런데 저수지 둑에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이미 오줌이 마렵기 시작했어. 허긴 그 날 하루 종일 뒷간에 드나들었는데, 그런데 또 왜 오줌이 그리 마렵던지. 걸으면서 조금씩 흘렸지 뭐니, 호호호. 속옷을 적시다가 나중엔 조금씩 다리를 타고 흐르더니 이젠 고무신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어. 미끈덕거리다가 나중엔 질퍽거리지 뭐니. 개구리라도 계속 울어대주면 좋으련만 개구리도 울음을 뚝 그치고 이젠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어쩔수 없이 저수지 둑에 쪼그려 앉았지 뭐니. 그런데, 산이 거꾸로 비친 저수지는 점점 어두워지는데 그 사람이 내 어깨 위에 한 쪽 팔을 돌려 안으려지 뭐니. 그 때 갑자기 큰 물고기 한 마리 철퍼덕 뛰어오르고 나는 너무나 놀라 그때까지도 조금씩 지리기만 하던 걸 그냥 한꺼번에 싸버렸지 뭐니. 얼마나 부끄럽던지, 씨원하기도 하구, 호호호……”
‘고몬 뭐 내가 맨날 어린앤 줄 아나, 그러니까 친구와 만날 때마다 너한테만 하는 얘기라며 그 대학생 형 얘길 하곤 또 했지. 내가 옆에서 다 알아듣는 줄도 모르고, 흥’
배밭은 지척에 있었다. 달이 밝았다. 배꽃이 화안했다. 멧새가 울었다. 아주까리 잎새가 이슬방울 무게로 축축 휘늘어진 퇴비장 옆에 나는 쪼그리고 앉고 고모는 뒷간 안에 쪼그려 앉았다. 뒷간문은 열린채, 내가 고몰 보고 웃고 고모도 마주 보고 웃었다.
“다 눴니?”
한참만에 고모가 물었다.
“아직!”
나는 하늘을 쳐다본다. 서편으로 기운 달이 맷방석만치 크다. 오동나무 잎이 반짝인다.
“고몬 다 눈겨?”
“그려.”
고모가 고쟁이를 여미고 일어서며 치마를 내린다. 그리고 내 곁으로 다가와 아주까리 잎새를 딴다. 치맛자락에 이슬을 닦는다. 그걸로 내 밑을 닦는다. 차갑고 미끄럽다. 방에 돌아와 누웠을 때, 고모가 등잔불을 훅, 불어 끈다. 등불이 꺼지자 창호 문살이 선명해진다. 문고리 주변에 수놓듯 끼워 넣은 해바라기 꽃잎들도 뚜렷하게 살아났다. 고모 솜씨다. 슬그머니 팔을 뻗어 고모 가슴을 더듬는다. 동생에게 뺏긴 엄마 젖보다 작고 단단하다.
“얘는…….”
고모가 내 손을 치운다.
고모 애인, 그 대학생이 어느날 군대에 갔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큰댁에 가본지도 꽤 오래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