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성서연구


	10/2008	목차 (2008년 10월호, 제152호) :햇순:을 읽고.. 편지로 띄우는 말씀 / 공동체성서연구자료 / 성서난해구 해설 / 공동체만들기 오늘을 바라보며 / 말씀과 삶의 뜨락 / 현장의 소리 / 강정규 연재동화 영성생활에 도움되는 책 / 에니어그램영성 / 공동체소식 / 공동체 이야기

강정규 연재동화

다 배 이 야 기 (3)

강 정 규

동화작가,
"시와 동화" 발행인,
한국아동문인협회장,
단국대 초빙교수.

그런데 정말 개는 거기 없었어요. 다행이지 싶었죠. 한편 서운하기도 했구요. 나는 이동식화장실을 한 바퀴 돌아보았죠. 무서운 짐승이 물어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요. 옛 주인이거나 새 주인 중 누군가가 얌전히 풀어간 게 분명했어요. 그런데 나는 눈물이 났어요. 줄줄 흘렀어요.
“잊어라. 소용없는 일은 잊는 게 수란다.”
아빠는 뜻 모를 말씀을 하셨어요.
‘그게 맘대로 돼요?’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어요.
…생명을 사랑해야한다고, 할머니는 땅속에 사는 미물을 생각해서 뜨거운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으셨다고, 이도 잡지 않고 털어 버리셨다고, 스님들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건 풀숲에 사는 개미나 거미 같은 풀벌레를 밟지 않고 쫒기 위해서라고 그게 평화운동이라고…, 아빠는 여전히 혼자 중얼중얼 엉뚱한 말씀만 하셨어요.
우리는 나뭇잎이 쌓이고 쌓인, 마치 우레탄을 깐 길 같은 길을 걸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산정으로 오르는 길과 비탈진 계단으로 갈라지는 곳,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 도착했죠. 그런데 거기 다배가 있었던 거죠. 이번엔 이정표 말뚝에 목줄이 묶여있었어요.
“주인이 버리려는 개가 분명해.”
“어제도 저 아래서 봤거든.
“아주 내버리지 않고 결국 챙기는 걸 보면 아마 주인이 마음 약한 사람인가 봐.”
“버렸다기보다 거저 줄 테니 맘 놓고 가져가라는 거지. 그런데 왜?”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못 미더워 그냥 버릴 순 없고 ‘잘 키워줄 분은 그냥 가져가시오.’ 이런 글이라도 써 붙일 것이지.”
“왜 하필 등산길이야?”
“사람 눈에 잘 띄라고.”
“네거리가 낫잖아?”
“잘못하다간 개장수한테나 끌려 갈 걸?”
“그래 맞아. 사거리 슈퍼 앞에 그 새 장수 말이지, 개도 몇 마리 갖고 다니더군. 유기견이 분명했어. 헐값에 파는 걸 보면.”
“코펠에 끓여 안주 삼아 소주 마시는 걸 내가 봤다구. 갈비뼈가 아주 가늘더라구. 강아지 뼈가 분명했어. 데리고 다니다 안 팔리면 잡아먹는 거지.”
“이 사람아, 그럴리가!”
“그래, 자네라면 몰라두, 히히.”
사람들은 이런저런 얘길하다가 더러는 산꼭대기 쪽으로, 더러는 비탈길 아래쪽으로, 더러는 방금 우리가 걸어온 길로 흩어졌어요.
“아빠!”
“그래, 우리도 내려가자. 목욕가야지.”
“아빠! 그게 아니구.”
“누가 데려가지 않아도 주인이 계속 키우겠구나. 걱정 말구 내려가자, 어서.”
나는 강아지 앞에 사료그릇을 놓고 마지막으로 강아지를 안았어요. 강아지가 내 볼과 턱과 귀를 핥았어요.
나는 강아지를 거기 놓았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강아지가 내 발등을 밟고 목줄에 매달리며 일어섰어요. 그리고 내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졌어요. 자꾸 꿜꿜 짖어요.
나는 계단 길을 뛰어내렸죠. 그리고 며칠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잘 돌아가셨지. 잘 돌아가시구 말구!”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어요. 장례식장은 잔치집 같았어요.
울긴커녕 웃고 떠들었어요. 겉으로 표는 내지 않지만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래 앓지 않고 돌아가신 게 다행이라고 했어요. 누군가는 긴 병에 효자 없다고도 했어요. 늙은 다배가 집을 나갔을 때와 똑 같았어요.
할아버지 장례를 모시고 온 엄마 아빠는 찜질방에 갔어요.
나는 다시 산에 올랐어요. 물론 혼자죠.
단숨에 계단을 올랐어요. 갈림길에 올라섰을 때 다배가 짖는 소리를 들은 듯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늙은 다배가 집에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계단 길을 뛰어 내려왔어요. 그리고 빵집아저씨네 빵집 앞에 왔을 때였어요.
어디선가 어린 다배가 글쎄 목줄도 달지 않고 방울소리를 내며 나타났어요. 다 낫는 약국집 앞에 세워놓은 승용차 밑에서 기어 나온 것 같았어요. 그동안 털이 좀 부스스해졌어요. 주둥이 근처가 좀 더러워지고요.
다배는 내 바지가랑이에 감겼죠.
나는 얼른 다배를 안아 올렸어요. 그리고 집으로 데려왔죠.
나는 급히 전단지를 만들었어요. 개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우리집 전화번호도 적었어요. 정성껏 만든 전단지를 문방구에서 여러 장 복사했어요. 그것을 여기저기 붙이며 다녔어요. 속으로는 제발 연락이 오지 않기를 빌면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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