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떠돌이 개
노숙자 신세 되어
산천을 헤매다가
삼거리 국밥집에서
할아버질 만나고
정암 선생 댁에서 풍산개
점순이를 만났네.
‘마음 약한 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지만
난 그 집에서 정말 행복했어.
맨 처음 만났던 대장과 행복했듯이
모처럼 점순이와 난
우리들의 언어를 되찾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정암 선생은 우리들을 사랑 하셨고
풍산개 점순이와 진돗개 순종 사이에
강아지까지 태어났다고.
말하자면 그러니까 내 새끼를 얻은 거지.
상상을 해 봐
마당에 기어 다니는 개미라도 보일만큼
달 밝은 가을밤에
배 부른 어미 개
배 깔고 누워 있고
그 배 베고 개 아비
옆에 눕고
마당엔 새끼 개들 돌아다니며
장난치며 노는 것을……
원스 어폰 어 타임……
따뜻한 남쪽 나라 섬마을에
강아지 몇 마리 태어났네.
그 강아지 뿔뿔이 흩어져
여기 저기 살았네
그 가운데 한 마리
만고풍상 다 겪고는
따뜻한 숲 속 마을 모처럼 짝을 만나
그 옛날 어미 개같이
강아지 몇 마리 태어났네
그런데 이를 어쩐다
어느새 나이 들어
눈앞이 안 보이고
눈꼽 끼고 털 빠지고 비틀거리고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돕긴커녕
할아버지 보살핌을 받아야 했네
그런데 할아버지 또한 이미
기력은 떨어지고, 시력도 떨어져
그림도 못 그리고,
양로원에라도 가셔야 할
형편인데, 죽어 가는 날 떨칠 수 없어
하루하루 미루고 계셨으니
쥐약이라도 있어야 먹고 죽지
농약이라도 있어야 먹고 죽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절매다가

어느 날 아예 집을 나와, 독한 마음먹고
고속도로로 뛰어들었지
불을 두 개씩 켜고
이쪽저쪽에서 달려오는
불빛 속으로
몇 차례 뛰어들다 어느 순간
내 몸이 가벼워지더라고
새털보다 가벼워져 날아오르더라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옛날 옛적 개 한 마리 살았다네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어쩌다 그대를 만났다네.

별단 개
앞장서 난다
우릴 따라 오라는 듯 시늉하며
저만치 헤엄치듯 난다
우리들 따라간다
눈먼 개 따라간다
산 넘고 숲을 지나
강 건너 난다
거기 산속 날아갈 듯 기와집 한 채
갑자기 컹컹 짖으며
개들 여럿이 마중 나온다.
“내 친구 풍산개 점순이와
진도산 백구네
새끼 개 강아지들!”
별단 개 눈언저리에
눈물이 흥건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