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영진 목사님께,

이럴 때 목사님께서 계시니까 참 좋습니다.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서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할 지 몰라하다가 문득 목사님을 생각해 냈습니다. 오늘 새벽까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유월의 비는 찢겨진 가슴만큼이나 참담하게 제 마음 속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분통이 터져 참지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고...... 분을 이 기지 못하여 벌벌 떨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제가 다만 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큰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를 그렇게 화가 나게 한 사람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마귀(魔鬼)들로 보였다는 것만을 말씀드리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점점 거칠어지고 악랄해져 간다는 사실 앞에서,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배신감에 짓눌려, 죽을 수도 죽지 않을 수도 없는 모멸감으로 오열(嗚咽)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또 다른 사실 앞에서 오열하였습니다. 밤새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새벽 무렵 저는 그렇게도 원망스럽고 분하고 원통했던 그 마귀의 얼굴이 사실은 바로 제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니, 제가 또 얼마나 놀랐고, 이 사실 앞에서 제가 얼마나 절망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제가 성경을 비록 건성으로나마 읽고 있었던 것이 고맙기도 합니다. 제 앞에 펼쳐진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1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3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않으며, 4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5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 오. (딤후 3:1-5)

이 말씀이 심판의 말씀 같기도 하고 위로의 말씀 같기도 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멀리하라고 말한 인물이 바로 저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니까 제 자신이 미워 죽겠습니다.

서란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