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광복절이 다가오면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여성단체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한 일본여성이다. 이름은 스즈끼 레이꼬. 60대 중반에 있는 단아한 모습의 그녀는 현재 일본 기독교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년 전 일본 중학교 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긴밀히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자기나라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면서 고뇌에 찬 편지를 써보내는 그를 보면서 일본에도 이런 양심적인 사람이 있구나 하고 놀라워했다. 나는 그가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동기가 무엇인가 물었다.

“일제시대에 한국사람들이 일어 배우기와 쓰기를 강요당한 사실에 대해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늘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한국인들과 대화를 할 때 일어만 쓰는 것이 참 미안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한국어를 배워 그들과 대화를 할 때는 한국말로 해야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한글로 글을 읽는 재미도 조금은 알게 되었어요.” 그는 이어서 자기가 한일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게 된 동기도 털어놓았다.

“수년 전 일한 기독교사를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출생한 1938년 9월 10일, 바로 그 날, 조선장로교회는 다수의 일본경찰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제적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던 것입니다. 제 부친은 교회 목사였지요. 일본에서는 한 사람의 목사가 첫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고 있는 바로 그 날 이웃 나라에서는 많은 목사와 신자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다니, 이것을 안 것이 내게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알게 된 이상 나는 평생 살아 있는 동안 이를 보상하는 일에 자신을 바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국인들에게 강제로 일어를 배우고 사용하게 한 것이 미안하여 자기도 한글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했다니 이 얼마나 숭고한 정신인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답신에서 당신과 같은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일본은 앞으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좋은 이웃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공적, 사적으로 기회만 있으면 한국을 방문했다. 처음 왔을 때는 혼자 독립기념관을 돌아보고 일본이 저지른 잔악한 행동에 자괴의 눈물을 흘렸단다. 두 번째로 기념관을 찾았을 때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문으로 옥사한 주기철 목사의 손녀딸을 우연히 만났다. 그녀로부터 이제 일본과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으며 다 용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또 한번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과 한국인에게 속죄하는 것, 그리고 양국 간에 좋은 우호관계를 성립시키는 것은 그녀의 사는 목표가 되었다.

일본교과서 왜곡문제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터에 최근에 유사관련법이 일본의 국회에서 통과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 재무장하고 군사대국이 되겠다는 것을 공식으로 천명하는 것이어서 한국을 비롯한 이웃나라들이 많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에도 스즈끼가 이 문제를 가지고 일본 국회의원과 정당,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맹렬히 반대운동을 펼쳤다고 들었다. 그러나 일본의 양심세력은 그 수가 너무도 적다. 스즈끼의 염원처럼 일본이 좋은 이웃이 되는 날이 언제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