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마을에서 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요. 우리 마을 네거리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앉아있는 이들, 서성이는 이들, 걷는 이들, 어슬렁거리는 이들, 떼 지어 모여 있는 이들, 길바닥에 앉아서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를 먹고 있는 이들..... 갑자기 궁궐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면서, 건장한 사람들이 우리 동네로 몰려 왔어요. 오늘 저녁 궁궐에서 왕자의 혼인예식이 있다면서, ‘누구나’ 다 초대 받았다고, 모두 궁궐로 가라고 해서, 우리는 떠밀리다시피 끌려 왔어요.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부터 우리가 초대받은 하객이 아니었다는 거지요. 당연하지요, 우린 이런 잔치가 있는 것조차 몰랐으니까요. 초대받은 이들이 따로 있었다는 겁니다. 당연하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왕궁에서 벌어지는 왕자의 혼인예식에 초대받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럼 누가 초대를 받았었나요? 아마도 고관대작 高官大爵이 아니었을까요? 대제사장 大祭司長이나 백성의 장로 長老나 율법학자 律法學者 같은 이들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초청을 받고도 이런 귀한 자리에 왜 오지 않았을까요? 임금이 초대했는데도 어떻게 감히 그걸 거절하고 오지 않을 수 있었지요? 더욱이, 임금이 종들을 번갈아 보내어, 잔치 준비가 다 되었다고 이제 오라고, 거듭 재촉까지 했는데도,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왕의 종들이 전하는 초청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답니다. 들리는 말로는,

더러는 밭으로 가버리고,
더러는 일터로 떠나고,
또 더러는 왕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서
실컷 놀려먹다가
끝내는 다 죽여 버렸다.1)

임금을 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거지요. 반역이지요. 하물며 왕자였겠습니까! 화가 난 임금은 그의 신하들을 모욕하고 죽인 살인자들을 다 찾아 죽여버리고, 그 도시 都市를 불살라 버렸답니다. 그 도시라는 것이 우리가 말로 만 듣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 도성이었답니다. 그러고 나서 임금은 우리 마을로 자기 사람들을 보내어 우리를 그의 아들 혼인잔치에 이렇게 강제로 끌어다 앉힌 겁니다. 먼저 초대 받은 이들이 그 초청을 거절한 덕분에 우리 같은 민초가 대궐도 구경하고, 다윗의 노래에 나오는 귀빈이 된 거네요?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2)

“나”는 예수라는 분이 말씀하신 비유 比喩의 작중인물 作中人物입니다. 등장하기만 할 뿐 말은 하지 않는 배역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모를 일입니다. 하늘나라를 설명하시면서 예수께서는 그 나라를 바로 한 임금이 한 일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한 임금님에게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풀게 되었고, 예식 날에 맞추어 귀한 손님들을 초청했는데, 초청 받은 손님들이 역심 逆心을 품고 집단적으로 예식 참여를 거부하고, 일부러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왕자의 혼인 예식마저 방해한 것이지요. 그들은 자기들을 부르러 온 왕의 심부름꾼들마저 잡아 욕보이고, 끝내 죽여 버렸답니다. 임금은 당신의 신하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다 죽여 버리고, 그 도시를 불사르고, 사람들을 풀어 거리 광장으로 보내어, “아무나, 만나는 대로” 데려다가 예식장을 채우라고 했답니다. 사람들을 데리러 마을 번잡한 곳을 찾은 왕의 사람들은 사람들의 신분도 따지지 않고, 신원조회도 하지 않고,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말 그대로, “아무나 만나는 대로” 다 궁전으로 데려 왔답니다. 그 덕분에 나도 여기까지 왔지만요. 예식장을 메운 하객 중에는 사람들이 사귀기를 싫어하는 세리들도 섞여 있었고, 저물어 가는 길거리에서 남자들을 기다리는 창녀들도 여럿이 있었습니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보다
그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3)

하늘나라 설명하시려고, 아들의 혼인예식에 귀빈을 초청한 왕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비유의 작중인물 “나”를 시켜, 무언극 無言劇의 주인공이 되게 하십니다. 그 “아무나”들이 몰려와 예식장을 꽉 채웠습니다. 예식장이 하늘나라를 가리키는 거라면 참 좋겠어요. 우리 같은 사람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임금이 우리를 이렇게 왕의 잔치에 초대하는 걸 보고, 여기에 막 들어서면서 우리 같은 사람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 같은 실감이 났어요. 여기에서 천국 잔치가 시작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네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했어요.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위 말하는 “예복 스캔들”입니다. 예식장 안으로 임금님이 들어오십니다. 모두들 일어서서 허리를 굽힙니다. 고개를 들라기에 황송하게도 용안을 뵈었지요. 하객들을 죽 둘러보시더니 내 앞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내 모습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시더니, 놀라워라! 그 인자한 음성으로, “이보시게 친구, 그대는 어찌하여 혼인예식에 하객으로 오면서 거기에 걸맞은 예복 禮服도 입지 않고 왔는고?”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 임금님이 우리를 당신 아들의 혼인 예식에 초청했다고 하는데, 길거리에서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 했다는 그 임금과는 다른 임금일 거란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말씀하시는 것이, 듣던 거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저는 그 이상한 임금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은 입속에서만 맴돌았습니다. (보십시오, 임금님, 어디 저만 평복차림입니까? 여기 끌려 온 우리 모두가 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왔습니다요. 모두들 다 평소에 입던 옷 그대로 입고요. 모두가 다 길거리에서 끌려온 억지 하객들이걸랑요. 길에 있다가 불려온 우리가 어떻게, 어느 틈에, 예복 같은 걸 챙겨 입고 여기 올 수 있겠습니까? 설령, 옷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다 해도, 어디 우리 같은 천한 것들에게, 왕궁혼인잔치에 입고 갈 예복이 있기나 합니까? 우리도 이 남루한 옷 때문에 걱정 안 한 건 아닌데, 들리는 말로는, 예식장 문 앞에서 누군가가 예복을 걸쳐줄 거라고도 했지만 여기 들어올 때 그런 거 못 보았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스카프 쪼가리 하나 건네주지 않았습니다요.) 누더기 위에 뭐 아무거나 하나 걸치면 그게 예복입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 듣도 보도 못한 예복이란 것이, 그런 겁니까? 들어올 때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습니다. 끌려 온 우리 말고는 이 예식장에 하객이라곤 우리밖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구무언 有口無言, 나는 등장할 뿐, 말 한마디 하지 못하도록 대본에 그렇게 적힌, 예수의 비유 속에 나오는 작중인물입니다. 변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저에게는 유죄판결 有罪判決이 내렸습니다. 그 이상한 임금은 저를 결박 結縛해서 지옥 地獄4)에 던지라고 명하는 겁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를 듣고 계신 청중 여러분, 이 기록을 읽을 후대의 독자 여러분, 이 임금이 나에게 한 처사가 의아 疑訝하지 않습니까? 청중과 독자 제위께서는, 잔치에 끌려 온 사람들이 다 예복을 입고 올 처지도 아니라는 걸, 그럴 시간도 없이 급히 끌려 온 이들이란 걸, 이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하늘나라가 마치 무지막지 無知莫知한 왕이 고달픈 사람들 왕궁 식탁에 억지로 데려다놓고 그 중에 제일 초라한 놈 하나 골라 억지 시비 걸어 지옥에 처넣는 것으로 설명되어 버리고 말다니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수께서는 “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선택받은 사람은 적다”5)고,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한 마디 더 보태시니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고 한 그 임금 이야기(마 22:1-10)와 하객의 예복을 문제 삼은 임금 이야기(마 22:11-14)가 본래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 다른 두 이야기가 잘못 결합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름 받은 사람은 많으나 선택받은 사람은 적다”니요? 이 말 역시 청중이나 독자를 혼란시킵니다. 이 혼인예식 손님을 두고는 맞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부름 받은 사람은 많았고, 선택받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늘나라라면, 나 한 사람 희생되는 일이 있어도, 참 다행입니다. 여전히, 특별날 것도 없는 “이무나”들이, 고관대작들이나 대제사장들이나 백성의 장로들이나, 율법학자들보다, 예수를 대적하는 이런 자들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평소에 예수께서는 짓궂게도 이런 말씀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 秘密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6)

내가 결박당해 지옥에 떨어진 것이나, “나” 하나가 선택받지 못한 소수로 몰락한 것이 “바깥사람들에게는” 이 비유 比喩의 비밀 秘密을 감추는 안전장치 安全裝置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청된 이들은 많은데 선택된 이는 적다는 비번 秘番은 “바깥사람들이” 열지 못하는 잠금장치인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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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 22:5-6의 내용
2) 시 23:5
3) 마 21:31b
4) 마 8:12; 22:13; 25:30
5) 마 22:14
6) '새번역' 막 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