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는 저마다 열망 혹은 꿈의 계이지가 상승하는 절기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고단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유다왕국이 혼란스런 정국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때, 그 어디에도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답답한 때에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의 큰 꿈을 꾸게 됩니다. ‘메시아 왕국의 꿈’입니다(사 11:6-8).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다”(사 11:1). 장차 이뤄질 나라는 낡고 병든 다윗 왕국의 심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발칙한 꿈입니다. 이사야는 왜 다윗 왕국의 심판을 꿈꿨는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만큼 큰 업적을 남긴 왕도 드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신앙의 역사는 다윗에 대해서 곱게만 보지 않습니다. 다윗을 장차 올 메시아의 모델로 삼고, 역사의 귀결을 다윗 왕조의 완성으로 보려는 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윗을 비롯한 제왕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 또한 존재합니다. 이사야는 바로 다윗을 비판적으로 보는 예언자 전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심판하여 끝장내고, 그 베어버린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게 하시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꿈 이야기는 새 시대의 지도자로 새로운 ‘가지’를 말하면서 ‘임금’ 혹은 ‘왕’이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다만 ‘평화의 왕’으로서 그 내적인 조건을 “공의와 성실”로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은 그분에 의해 비로소 평화가 실현되고, 약육강식으로 찢겨진 인류와 창조세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피에 주려 있는 피조물들이 더 이상 서로에 대해 살의를 품지 않고, 약한 이웃을 더 이상 힘으로 덮치지 않으며, 독을 내뿜는 사나운 이빨이 더 이상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성품을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시[는 분]”,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는 분]”,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분]”(사 11:3)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사야의 꿈과 이상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이 하나의 큰 강줄기를 이루어 흐르다가 마침내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실현됩니다.

시대가 흘러 이사야의 꿈의 결실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덧붙여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증언합니다. 이사야는 메시아로 오실 분의 성품을 “공의와 성실”(사 11:5)로 표현한 반면, 요한은 “은혜와 진리”로 표현한 것입니다. 문맥을 따라 가보면, 이사야는 장자 오실 메시아에게서 레짐 체인지 regime change를 기대했다면, 요한은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통치 Government를 꿈꾼 이사야, 인간 개개인의 새로운 존재 New-being로의 변화를 기대한 요한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즉 성육신에 대한 증언은 절대 권력을 향한 신들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는 측면에서 이사야의 이상과 어긋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요한의 성육신 사상은 인간을 물질로만 여기는 시대 조류에 대한 도전이고,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세계에 대한 경종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열심히 외친다고 해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견고하게 유지돼오던 시스템이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변함없이 죄악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이름으로 고약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레짐 체인지만으로 나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연전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한 판결을 내렸을 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결정”이라고 칭송했고, 이정희 당대표는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통탄했습니다. 같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왜 이런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가? 요한 사도가 간파한 세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제각각인 만큼 그들의 머릿속에 든 관념 역시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쉽게 죄악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오랜 세월 관행처럼 굳어진 공직사회의 관성 역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레짐 체인지와 함께 각 사람의 의식의 변화도 일어나야 합니다. 통치의 변화와 함께 사람마다 새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내적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