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8 / 2018

 

 

 

 

 

 

 

 

 

 

 

 

  성서 난해구 해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디에다가 성령 도장을 찍어주신다는 겁니까?

 

 

 

 

 

 

  에베소서 1 : 13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번역자문위원
세계성서공회연합회 번역자문위원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yjmin@bskorea.or.kr






 



에베소서 1장 13절을 [개역](1961)과 [개정](1998)으로 읽어보면 성도들이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印치심을 받았으니”

[새번역](1993/2004)으로 읽어보면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다” 대신 “성령의 날인을 받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 聖靈의 날인 捺印을 받았습니다.”

둘 다 성령 도장을 받는다는 말인 것 같은데요, 우리의 몸, 혹은 마음 어디에 이런 도장을 받습니까?

도장 받기를 원하는 한 신도 드림



성령 도장 받기를 원하시는 성도님,

성령의 날인을 받든가, 인침을 받든가 두 표현이 다 성령 도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도님께서 에베소서 1장 13절의 “성령의 날인” 혹은 “성령의 인 치심”은 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고 은유 隱喩라는 점을 먼저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문맥을 보면, 우리가 “진리의 말씀”, 곧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가 나를 자유하게 하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을 모실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우리에게 “성령” 도장을 찍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귀하께서는 지금 그렇다면 우리의 어디에 성령의 날인이 있는지, 우리 몸 어디에 그 날인이 있는지 를 묻고 계십니다. 마음에 성령의 날인이 있다면, 너무 막연하지요. 우리는 교회 생활에서 기독교의 기원과 전통과 성경을 배우고, 구원의 메시지를 듣고, 그 진리를 깨닫고, 믿고, 그리고 자유를 발견합니다. 자유를 체험합니다,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질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국민으로 부름 받은 것에 응답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어디쯤에 “성령의 날인”이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확신이 그 날인일까요?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것이라고 서명 署名하시고 signed, 봉인 封印하신 sealed 그 도장(圖章/ signet)을 우리는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장”(계 7:2; 9:4)이라는 말이나 “하나님께서 찍어주신 그 도장”은 “은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은유법은 비유법 중의 하나입니다. 사물의 본뜻은 숨기고 표현하려는 대상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이는 나에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 꽃송이라오”(아 1:14). 여자가 자기 남자를 두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은유입니다. 남자도 자기 여자에게 이렇게 응답합니다. “아름다워라, 나의 사랑. 아름다워라, 비둘기 같은 그 눈동자”(아 1:15). “비둘기 같은 그 눈동자”는 은유가 아니고 직유입니다. “…가 …같다” 이것은 직유입니다.

최근에 모 정당 권한대행이, 자체 정당의 문제를 심한 중증외상 重症外傷으로 진단하고, 모 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장에게 가서 자기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줄 것을 제안 했으나 그 의사가 그 제안을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권한대행이 비유적 암시를 역사적 사실로 착각한 것은 아닐 거고… 저에게는 그 권한 대행이 자기 당이 당면한 사태의 심각성을 행위비유 行爲比喩 혹은 행위은유 行爲隱喩로 연출한 기가 막힌 행위예언 行爲豫言으로 보입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으랴가 아니라, 자기 당이 당한 처지의 심각성을 온 국민에게 깊게 각인시키려는 의사 전달 행위로 보입니다. 우주선 宇宙船을 타고 “하늘 영역” 혹은 “하늘 세계”로 가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을까요? 극단적 문자주의 literalism에서는 가능한 일일 것이지만, 일반적 상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가를 인용한 김에 한 곳을 더 인용하고 싶습니다.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새번역] 아 8:6)

아가의 여주인공이 자기 남자 친구에게 하는 말입니다. “성령의 날인”이라는 표현이 언어에 따라서는 난해한 은유일 수는 있어도 “사랑의 날인”이라고 하면 아가에서 보듯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도장 새기듯,
하나님의 마음에 저를 새겨주세요.
도장 새기듯,
하나님의 팔에 저를 새겨주세요.

그래! 그러지!
도장 圖章 새기듯,
내 마음에 너를 새기마.
도장 새기듯,
내 팔에 너를 새기마.

하나님, 저두요!
도장 圖章 새기듯,
제 마음에 하나님을 새기겠습니다.
도장 새기듯,
제 팔에 하나님을 새기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갈 수 있으면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겁니다. 우리는 바로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도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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