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2018

 

 

 

 

 

 

 

 

 

 

 

 

  실험교실

 

스토리텔링(의) 에스더기 묵상 (1)

 

 

 

 

 

 

 

 

 

 





서 정 남


목사
작은교회
성경삽화와 묵상으로 문서선교 사역.
sugunsa@hanmail.net






 





이스라엘이 애굽의 식민지를 벗어나 자유민 신분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는 아말렉족속, 그들과 싸워야했고 이겨야지 지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 전쟁에는 칼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도와 칼이 함께 했습니다. {산}에는 모세와 {중보자}가 있고 골짜기 {현장}에는 여호수아 {사령관}이 전두지휘 합니다.
하나님이 승리로 이끄십니다. 모세는 기념으로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였습니다(출17:15).



세월이 흘러,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왕정시대를 맞습니다. 초대 왕 사울 때에 아말렉이 또 치고 들어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진멸하라 하셨는데 왕은 무시하고 좋은 것만 남깁니다(삼상15:9). 하나님은 그를 세우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세월이 흘러,

사울 왕은 그가 남긴 아말렉족속의 후손에 의해 전사합니다(삼하1:1,13). 무죄한 아들 요나단도 함께 전사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나라를 또 다시 잃고 식민지 하로 되돌아갑니다. 왕 다음 가는 실세는 아각사람 하만인데 그는 아말렉의 후예입니다. 하만은 자신 앞에서 불손한 모르드개와 그 동족까지 진멸할 계획을 세웁니다.

아말렉은 참으로 두고두고 유대를 괴롭힙니다. 사탄의 방법은 뒤에서, 약자들에게 비겁하게 합니다. 출애굽 때, 아말렉의 비겁한 행위를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들이(아말렉)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신25:18).” 하만도 동일수법으로 왕을 조종하여 나라를 잃은 약자 유대인을 진멸하려 합니다. 왕비 에스더가 유대임을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아말렉을 멸할 그 사명을 이어 받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금식으로 긴급 전문을 띄웁니다. {왕궁}에는 {중보자} 에스더가 있고, {현장}에는 {사령관} 모르드개가 유다인을 전두 지휘합니다.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17:14)."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됩니다. 여호와 닛시!!!

불순종한 사울의 왕관이 다윗에게 갔듯이, 하만은 자신이 만든 교수대에 자신이 달리고 무죄한 열 아들을 포함한 가문과 지지자들이 멸절합니다. 그의 관이 모르드개에게 갑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저와 여러분이 아말렉을 멸할 그 사명을 이어 받습니다. 순종하면 면류관을 쓰고 민족을 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살전5:8).


에스더기 1장


에스더기의 첫 장면은 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열리는 큰 잔치입니다. 전국에서 고관들이 다 모였습니다.

에스더기 첫장 첫절은 아하수에로 왕의 집권영역을 소개합니다. 아하수에로는 바사의 통치자를 칭하고 그의 실명은 크세르크세스입니다.
지도를 보면, 인도에서 서쪽으로 127도를 다스립니다. 아랄 해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카스피해, 흑해, 지중해, 이집트일부, 홍해 그리고 페르시아 만, 홍해 그리고 이집트 일부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이런 광범위한 영역은 부친인 다리오 왕의 업적입니다. 아직 그리스까지는 못 미치고 있습니다. 다리오는 그리스 정복 길에 나섰다가 죽습니다(by Herodotos). 그런 부친의 한을 풀기위해 이번에는 크세르세스 왕이 그리스 정복을 계획합니다. 준비를 마치고 단합대회 겸 공로자 위로 파티가 바로 이 잔치입니다. 자기자랑의 잔치를 반년 간 하고 이어지는 잔치는 평민을 위한 7일 간의 잔치인데 이 또한 화려함의 극치입니다.

취중의 왕이 지방관들에게 왕후를 자랑하고 싶어 부릅니다. 영어성경은 “display”로 표현합니다. 미모, 미모가 늘 문제이군요. 크세르세스는 자랑하고 싶었고~ 아브라함과 이삭은 숨기고 싶었고~ 미모가 불행의 씨앗도 될 수 있으니 청년들은 참고 해야겠습니다. ^^

문제는 왕후 와스디가 어명을 거절합니다. 자신을 show하고자 하는 왕에 대한 거부 심리일까요?

“왕이 진노하여 마음이 불붙는 듯하더라(1:12).” 대노한 왕이 신하에게 자문을 구하니 므무간이라는 현자 왈, 왕비의 행동은 왕과 우리들에게까지 도리가 아니니 전국 여성들에게 본보기로라도 폐위가 마땅하다고 간언합니다. 왕은 즉시 므무간의 말대로 각 지방에 조서를 내립니다.

등장인물들을 젊은이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개념없는 금수저 아하수에로’,
‘충성의 가면을 쓴 므무간’,
‘지나치게 개념있는 와스디’,

이 모든 일들은 누구를 위한 진행일까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없지만 이 흐름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강한 자들 아래에 가려진 약자들에게 주님의 시선이 닿고 그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시라(롬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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