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백성들을 줄잡아 240여만으로 본다면 그 많은 무리가 새로운 정착지 가나안에 입주해서 각자 살기 위해 서로 부딪치며 얼마나 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사기, 협박, 납치, 폭행, 겁탈, 도둑질, 배교, 살인 등 온갖 범죄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범죄들이 일어났을 때, 저들은 범죄자들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민수기는 특별히 살인한 자에 대해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제공합니다. 어쩌다 살인이라는 끔찍한 죄를 범한 이들이 무차별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도피성’을 지정해 보호한 것입니다(민 35:9-15; 신 19:1-13; 수 20:1-9).

물론 도피성은 살인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너희를 위하여”(민 35:11/개역) 라는 선행구가 말해주는 것처럼 모든 백성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도 의도치 않게 살인자가 되었을 때, 혹은 살인의 누명을 썼을 때 직접 보복을 당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고, 정식 재판을 받을 때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닌 레위인이 거주하는 지역 여섯 곳을 지정하여(6) 원주민-이주민-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그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이들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은 물론이려니와 외국인이나 너희와 함께 사는 본토인이면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자가 도피하는 곳이 될 것이다.”(민 35:15/표준) 레위인이라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맡은 족속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생명이 위급한 이들을 보호할 의무를 부과한 것입니다.

죽음의 땅에서 살길을 찾아 제주도까지 밀려온 5백여 명의 예멘 난민으로 인해 지금 대한민국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환대는 못할망정 가짜 난민이라느니,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관계가 있다느니, 혈세 낭비라느니 하는 근거 없는 소문을 유포시켜 우리 땅에 온 난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려 60여만 이상의 난민수용반대 청원이 올라와 있다고 하니(2018.7.3.현재) 이보다 더 난감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살인자라 할지라도 도피성을 지정해 위급한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부과했던 출애굽 직후의 백성만도 못한 일이 자칭 문명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배은망덕도 없습니다.

근세 들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난민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조선이고 대한민국입니다. 지금 중국동포, 재일동포, 사할린 동포, 구소련 지역에 산재한 동포, 심지어 남미지역의 동포 대부분이 대한제국의 멸망으로 발생한 난민 출신 또는 그 후예들입니다. 6·25한국전쟁 통에 발생한 600여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 이후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가 유기한 고아 20여만 명을 맡아 기를 이가 없어 해외로 입양보내기도 했습니다. 제일동포 가운데 유달리 제주 출신이 많은 것은 소위 4·3사태 때(1949년), 대한민국 정부군과 기독교청년 중심의 서북청년단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도피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잠재적인 일자리 난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국내 3D사업장에는 어김없이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농촌은 이미 외국 노동자들 없이는 농사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난민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문재인 대통령까지 작금의 난민 혐오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런 일입니다. 대한민국이 모든 난민을 수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난민 혐오는 막아야 합니다. 언제 또다시 난민이 될지 모를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장면은 오늘의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이 일 후에(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끝난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12:9)라고. 사도 요한이 보여준 하나님의 나라는 단일민족이 아닌 다인종,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난민을 배척 혹은 혐오하지 않고 환대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