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06/2007

 

 

 

 

 

 

 

 

 

 

 

 

영혼의 논리와 언어

 

영혼의 종교(The Soul's Religion) (40)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토마스 무어 지음






 


내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를 꺼리는 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명백하게 나의 종교성과 신앙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어쩌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의 경건을 볼 때, 필경 그것은 이미 어떤 형식 속으로 너무 멀리 가버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한가지 범주 속으로 전락한 것보다는 종교와 세속 사이의 첨단에 서 있는 것이 더 낫다. 실제적인 학설이 또 하나 있다. 즉, 종교성의 외양은 종종 종교적 실행의 질과 반비례한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해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이 믿는지 안 믿는지를 내가 아는 것처럼 추정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짐작컨대 고대 신학의 ‘부정적인 길’ 또한 비움의 길을 강조하는 것이 적어도 하나님께 대한 나의 접근을 불교나 다른 종교의 접근법으로 근접하게 해 준다.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 모든 사람이 똑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암시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어떤 이해의 공통점을 가지고 이런 어려운 영적인 문제들을 탐구할 수 있다. 심지어 같은 공동체 안에서 조차도 이해심과 믿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를 멈추기 위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말한다. 보통 나는 리얼리티를, 아니면 더 낫게는 미스테리를 불러내기 위하여 그 이름을 피한다. 이런 모순과 역설이 제 자리에 있으면 나는 걱정을 안 한다. 그러나 어떤 진리나 어떤 확고한 입장이 끼어들면, 나는 내 생각을 깨끗이 씻고 하나님께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비움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신비가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의 글을 읽어야 한다.



세계는
하나님의 위엄으로
가득찼다.
불꽃처럼 빛나기를,
금박지 다발에서 빛이 나는 듯하다.

제라르드 맨리 홉킨스, “하나님의 위엄”

19.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분

내가 공경하고 싶은 하나님은 숨은 하나님 deus absconditus 또는 물러서신 하나님 deus otiosus 이시다. 내가 적절한 문맥에서나 정도에 맞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마다하지는 아니 한다. 그러나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는 첫째 계명은 항상 나를 멈추게 만든다. 내가 최소한을 말하거나,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사용하지 않는 한, 나는 가장 나쁜 종류의 우상, 즉 이런 신비적인 문제에 있어서 내가 말하는 것을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다거나 내 마음이 편안할 만큼 확정지었다는 환상에 빠져들 것이 두렵다.

때때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가 영혼이나 종교적인 토픽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도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이 드물다는데 대하여 놀라고 실망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 나를 놀라게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가 글을 쓰는 모든 것이 신학이요 따라서 하나님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 마음속으로는 나도 신학자이다. 인정하건대 뉴 브랜드이다.

그럼에도 신학자는 신학자이다. 내가 쓰는 글의 면면에 하나님이 조용히 현존하신다. 그러나 어쩌면 그게 문제다. 내가 선호하는 신학은 궤도를 벗어나면서까지 하나님의 무한성과 표현할 길 없는 거룩함과 신비성을 보호하는 신학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속에서 비슷한 말을 한다. “나는 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종종 꺼린다. 왜냐하면, 어쩐지 그 이름이 나에게는 경우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내 자신이 약간 부정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본회퍼는 동시에 생애를 신학과 목회에 바쳤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제자직 discipleship이라 부르는 것을 수행하는데 진정한 순교자가 되는 시점까지 계속하였다.

나 자신으로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안 쓰거나, 써도 조심스레 하는 사람이나 그 이름이 나타내는 바에 대해서만 말하는 그런 신학자들을 나는 신뢰한다. 본회퍼는 하나님을 초월한 신에 대하여 말하며, 폴 틸리히 Paul Tillich는 신론을 초월한 하나님을 권장한다. 선사 스즈끼 순류 Shunryu Suzuki는 하나님이란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으나, 내가 알기로는 그가 비움의 영성에 대하여는 지극히 헌신적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전락시키는 잘못, 즉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참혹한 실수를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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