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죽은 이는 죽은 이고, 산 사람은 새 음식에
오랜만에 친구 만나 술도 실컷 마셨구나.
밤잠은 집에 와 자도 새벽같이 다시가고
장지까지 따라가니 그새 며칠 지났구나.
쓸쓸함 달랜다고 아랫마을 친구 찾아
바둑 한참 빠졌는데 후두둑 토란잎에
빗방울 듣는구나. 어이쿠나 소나길세
할멈 얼굴 떠오르고, 할멈 얼굴 떠오르자
비설거지 생각나고, 방독 뚜껑 열었던가
빨래도 걷어야지. 바둑판 밀쳐놓고
쏜살같이 달려온다. 허겁지겁 달려와서
간장 된장 고추장에 장독 뚜껑 우선 덮고
마른 빨래 걷으려고 바지랑대 내리는데
이것이 웬일인가, 빨랫줄에 걸린 조끼
커다란 주머니 속에서 포르르 새 한 마리.
가슴이 두근두근, 바지랑대 세워두고
주머니 속 들여다보니 이게 뭔가, 새알일세.
마른 이끼 잔디뿌리 나무껍질 물어다가
주머니에 둥지 틀고 알을 품고 있었구나.
이 일을 어쩔거나, 조끼는 그냥 두고
다른 빨래 주섬주섬 대충대충 걷어다가
청마루에 던져두고 멍청하니 바라본다.
빨랫줄에 두 마리 새 어느새 와 앉았는데
부리에서 꼬리 끝까지 한 뼘은 될까 말까
잿빛과 갈색 깃털 부리 또한 색다르다.
어느 것이 암컷이고 어느 것이 수컷인가.
따그닥 따그닥닥, 고갯짓 날갯짓에
한참 동안 망설이다, 그 가운데 한 마리가
조끼 쪽으로 다가앉아 이쪽 눈치 살피더니
둥지 속으로 들어가고, 남은 녀석 거동 보소.
조촘조촘 움직여 조끼 옆으로 다가앉네.
자꾸만 이쪽 보는 게 불안한 모양이다.
무엇을 어찌할꼬, 주룩주룩 우르르 꽝!
마음 갈피 못 잡고 이리저리 서성이다
옳다구나 그거구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지붕 새면 몸이 젖지. 할아버지 거동 보소
뒤꼍으로 달려가서 요소비료 비닐포대
찾아 들고 나오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서
가위 들고 나오더니, 포대 하나 반쯤 터서
둥지 우선 덮어주고, 설날 손주 연 만들던
대나무를 쪼개 대고, 비닐포대 활짝 펼쳐
비 가리개 만드는구나. 조끼 위에 지붕 덮고
빨래집게로 집어놓고, 조심조심 바지랑대
다시 올려 세워두고, 할아버지 혼자 웃으며
겨우내 버릇대로 담뱃갑을 찾는구나.
주머니로 손이 가지만 동저고리 바람일세.
담뱃갑은 어디 두고 라이터는 어디갔나.
이리저리 찾아내어 담배 한 대 태워 물고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빨랫줄에 새 두 마리 비 맞으며 앉았구나.
새야 새야 이쁜 새야, 해코지 안할 테니
안심하고 알 품어라. 놀라게 해 미안쿠나.
어서 가서 알 품어라. 비 안 새게 가렸으니
마음 놓고 새끼 까렴. 처마 밑에 떨어지는
낙수 소리 톰방톰방. 저만치 앞산 골짜기로
피어오르는 비안개 속, 푸드득 어디선가
꿩 한 마리 날아오르고, 어느새 비 그쳤나
빨주노초파남보라.
지집 죽고 자식 죽고, 헌 누데기 걸쳐입고
이집 저집 문전걸식, 국꿍국꿍 국꿍국꿍
국꿍새 소리 들려온다……
초상집 무덤 잔디도 이 봄비에 잘 살겠네.

비 갠 아침 산속 마을, 온갖 잡새 날아든다. 라디오 소리 줄여놓고 새 둥지 바라본다. 한 마리, 수컷인가 빨랫줄에 앉아 있고, 밤이나 낮이나 지키다가 어미 새와 교대하고, 그 사이 암컷인가 어디 잠깐 날아가더니 먹이 먹고 돌아오는지, 똥 누고 돌아오는지 다시 또 교대하고, 암컷이 주로 품고 지키는 것 수컷인가. 할아버지, 막걸리 한잔 마시고 딸네 간 할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