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의 기본 성격유형은 9가지이지만 날개(2), 본능적 유형(3), 건강수준(9)으로 조합을 하면 총 486가지의 성격유형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이차조 Ichazo는 9가지의 기본성격유형과 본능적 유형(3)을 조합한 하위유형을 체계화 하였고, 리소 Riso는 건강수준(발달수준)을 발견하고 범주화하여 9가지의 유형을 81개의 하위유형으로 제시하였다. 54 에니어그램이란 기본성격유형(9)에 본능적 유형(3)과 날개(2)를 조합한 것을 말한다. 각 기본성격유형을 중심으로 날개, 하위유형, 건강수준에 따른 특성들은 체계화되었지만 각각의 내용들이 통합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54 에니어그램은 바로 이러한 체계들을 통합하여 전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세분화된 54 에니어그램을 체계화 하는 일은 한 개인이, 혹은 에니어그램 전문가가 자신과 타인을 다양성의 관점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2008년부터 54 에니어그램 연구에 관심을 가지면서, 각 유형의 주요 개념 추출작업을 시도하였다. 하나의 기본적인 성격유형과 하나의 날개, 하나의 하위유형을 가진 한 개인을 이론적인 지식으로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세분화된 유형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였고 그 내용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세분화된 6가지 타입의 9번 유형은 동일한 9번이지만 서로 다른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고,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행동의 차이, 위축된 상태의 행동반응 등에서 구별되는 차이를 보였다. 특히, 어느 본능적 유형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건강한 방향으로의 수직이동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체넛 Chetnut(2008)은 본능적 유형의 표출은 격정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본능적 유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였다. 모든 동일한 유형에게서 동일한 격정이 나타나겠지만 어느 본능적 유형에 속해있냐에 따라 강도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54 에니어그램의 서론에 해당하는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부분을 설명 혹은 논의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용어정리이다. 용어 정리는 앞으로 연재될 글의 일관성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 두 번째는 54 에니어그램 조합의 기준이 되는 날개와 본능적 유형을 간략히 설명하려고 한다.

용어 정리의 첫 번째는 ‘본능적 유형’이다. 김영운(2013)을 비롯, 에니어그램 번역서들에서 ‘본능적 유형’을 ‘하위유형’으로 명명하고 있는데 리소와 허드슨 Riso & Hudson(1996)은 ‘본능적 유형’이 3개의 그룹을 독립적으로 분류시키는 독립변수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독립적 변이’로 명명하고 있다. 연구결과를 근거로 볼 때 리소와 허드슨 Riso & Hudson(1996)의 주장에 충분한 지지를 하게 된다. 따라서 절충적으로 ‘본능적 유형’으로 정리해서 쓸 것이다. 반면, ‘본능적 유형’의 개념정의에 있어서는 많은 에니어그램 권위자들의 주장과 김영운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김영운(2013)은 ‘본능적 유형’이 한 가지에 집착되기 보다는 두 가지가 발달되고 한 가지가 발달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으나, 이차조 Ichazo(1995), 나란호 Naranjo(1995), 리소와 허드슨 Riso & Hudson(1996), 베어 Bear(2001) 등은 한 인간의 ‘본능적 유형’은 하나의 유형에 집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인터뷰 과정에서 확인된 바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본능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뚜렷한데 발달한 본능을 하나로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했으며, 오히려 하나의 본능이 강하고 하나는 발달하지 못했으며, 나머지 하나는 중간 정도 수준으로 발달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김영운의 주장을 지지할만한 근거가 되지만 논의를 할 만할 정도로 근거자료가 충분하진 않기에, 대부분의 에니어그램 권위자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기술하려고 한다. 정리를 하자면, 본 글에서는 친소(성적)본능, 사회적 본능, 자기보존 본능을 ‘본능적 유형’으로 용어정리하고, 개인은 세 가지의 본능을 어느 정도는 다 가지지만 한가지의 본능적 유형이 다른 유형보다 더 발달한 것을 전제로 기술할 것이다.

두 번째 용어 정리는 본능적 유형 중 하나인 친소(성적)유형이다. 친소(성적)유형을 27 본능적 유형을 체계화한 나란호 Naranjo(1995)를 비롯하여 리소와 허드슨(1996)은 sexual instinct(성적본능), 체넛 Chetnut(2008)은 one to one(일대일관계)으로 명명하였다. 반면 김영운은 성적본능(2013) 혹은 친소본능(2010)이라고 하였으나 친소본능이 더 적합한 의미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 동안의 연구 작업의 결과를 토대로 할 때 친소본능이 가장 적합한 용어라고 판단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친소(성적)본능으로 기술하려고 한다.

세 번째 용어 정리는 리소와 허드슨 (1996)의 level of development(발달수준)이다. 김영운(2010)은 발달수준을 건강연속성 Health continuum과 건강수준 level of health으로 설명하였는데, 이 개념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속성과 심리적인 건강수준이 함께 고려된 개념임을 염두에 둘 때 ‘건강연속성’과 ‘건강수준’으로 용어를 정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54 에니어그램에서 기본 성격유형을 제외한 두 가지 하위유형은 날개유형과 본능적 유형이다. 날개는 기본유형의 양쪽의 점으로, 모든 사람은 양쪽 날개를 가지지만 어떤 사람은 한쪽 날개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어떤 사람은 날개의 영향을 덜 받거나, 양쪽 날개의 영향을 동등하게 받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성격유형과 날개의 혼합물이기 때문에(Riso & Hudson, 1996) 같은 유형 안에서도 다른 날개를 가진 사람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것은 김영운(2013)의 설명대로 펼쳐진 날개에 따라 추가되는 특성과 부차적인 격정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능적 유형은 별개의 유형론으로 존재 할 수 있으며, 유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날개나 건강수준으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Riso & Hudson, 1996). 인간행동의 일차적 본능은 친소(성적)본능, 사회적 본능, 자기보존 본능으로 구분된다. 친소(성적)본능은 1대1 관계를 선호하고 친밀감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지니는데, 이러한 욕구는 강렬한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과 맞물려 일의 우선순위를 때때로 무시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본능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가치 있고 존경받는 것에 몰두하고, 집단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편안히 여기고 집단의 역동 속에서 사회적 본능 욕구를 충족하려고 한다. 자기보존본능은 기본적인 생존욕구에 기본적인 관심사를 두고 있으며 안전과 신체적인 안락함을 중심으로 가장 실질적인 삶의 태도를 추구한다.

54 에니어그램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개념을 이상과 같이 정리하였다. 리소와 허드슨 Riso & Hudson(1996)은 아직은 연구축적이 부족해 54 에니어그램의 유용성을 논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이미 진행된 연구 작업을 통해 54 에니어그램의 유용성에 확신이 들었기에 이 글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54 에니어그램이 에니어그램을 보다 정교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자기 성장의 세부적인 방향지시등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