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와 함께 창조의 질서 속에 숨겨진 생명의 신비를 묵상하다가 우연히 만난 책 이야기를 해본다. Robin Wall Kimerer가 쓴 책, [이끼와 함께] - Gathering Moss - A Natural and Cultural History of Mosses에서 이끼라는 보잘것없는 생명체를 통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생명의 신비를, 놀라울 만큼 차분히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1년 이상 우리를 힘들게 하는 바이러스와 달리, 이끼는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다른 생명이 살 터전이 되어 준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바이러스와 달리 이끼는 작고 단순한 몸으로 생태계를 살찌운다.

이 책은 그 작은 생명체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느릿느릿, 그러나 철저하게 관찰하여 우리에게 작은 생명, 이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는 책이다. 미국 인디언 원주민 후손인 저자는 현재 뉴욕주립대학교 교수인 식물학자다. 생소한 학명이 낯설기는 하지만 유려한 문장과 세밀한 그의 관찰에 자연스레 빠져들게 하는 묘한 끌림이 있어서 책을 한번 잡으면 놓기가 어려웠다.

이끼는 작다. 꽃과 열매가 없고, 줄기와 뿌리가 단순하다. 다른 풀꽃과 같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내지도 못한다. 덕분에 다른 식물들이 살지 못하는 곳에 먼저 자리를 잡아 다른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

그리고 유연하게 주변 환경에 적응해 번성하며 곳곳을 채워나간다. 작지만 자연의 구성체로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작은 삶에 훌륭하게 적응해 번성하며 곳곳을 채워나간다. 지구상 거의 모든 생태계에 서식하는 2만2천여 종에 달하는 이끼는 생물학적 기준으로 매우 성공한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그 작은 이끼가 어떻게 살아남아 이처럼 성대하게 번식할 수 있었나를 들여다본다. 이끼의 생태를 과학적으로 규명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기록을 뒤져 이끼와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도 밝혀낸다.

저자를 통해 ‘생태천이’(生態遷移, ecological succession)라는 생경 生硬한 낱말을 만나면서 생명의 신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기쁨을 얻었다. 이 개념은 식물학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로, 일정한 지역의 식물 군락이나 군락을 구성하고 있는 종들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천해가는 현상으로, 이것이 계속됨에 따라 생태계의 속성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맨땅을 그대로 방치하면 한해살이풀, 여러해살이풀, 양지성 陽地性 수목, 음지성 陰地性 광역수림으로 점차 변한다. 저자는 광산업으로 활기를 띠던 한 지역이 폐광되면서 황폐해졌는데, 자연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이곳이 어떻게 복원되는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맨 먼저 황폐한 땅에 이끼가 덮이고, 그곳에 사시나무들이 자라고 그늘이 생긴다. 그런 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광산 폐기물 더미 그 황폐한 땅에 작은 사시나무 숲이 자리를 잡았다. 이 사시나무들이 이끼에 갇힌 씨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그늘의 섬이 점차 커졌다. 나무는 새를 불렀고 새는 우리 주위에 만발한 라즈베리, 딸기, 블루베리를 불렀다. 숲 가운데는 그늘이 져 시원했고 사시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폐기물 위에서 얇은 부엽토 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주변 숲에서 이주해 온 단풍나무 묘목 몇 그루가 광산의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숲의 보호를 받으며 뿌리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낙엽을 헤치자 이곳을 처음으로 치유하고 다른 식물들을 불러들인 솔이끼의 잔해가 나타났다. 짙은 그늘에서 솔이끼는 임무를 마치면 곧 물러날 것이다. 이 나무섬은 폐기물 더미를 개척한 이끼의 유산이다.”(pp.91~92)

저자는 이끼의 삶과 가장 긴밀한 동물을 고르라고 한다면 완보동물 緩步動物인 물곰(water bear - 몸길이가 1.5mm를 넘지 않음)과 윤형동물 輪形動物로 불리는 담륜충(擔輪? -rotifer)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이끼, 물곰, 담륜충, 이 세 생명체의 행동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른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삶의 징표인 운동, 기체교환, 신진대사가 모두 소멸한다. 셋 모두 생명력이 없는 가사동결(假死凍結 anabiosis)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분이 다시 생기면 곧바로 되살아난다. 소생하기 전의 죽음과 같은 그 상태는 생명이 멈추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암시했다. 특히 물곰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단적인 실험 대상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어떠한 유기체도 살아남지 못할 건조한 환경, 팔팔 끓는 액체(151도), 절대영도에 가까운 영하 273도의 진공상태에 놓였다. 하지만 이 같은 고문을 이겨내고 물 한 방울로 다시 살아났다. 물과 만나면 생명의 화학작용이 재개되는 메커니즘은 이끼와 물곰에게 일상이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다.

수많은 토론과 실험 끝에 사람들이 내린 결론은 가사동결 상태에서 유기체는 생명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거의 인식할 수 없는 속도로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과정은 우리 발밑 이끼 숲에서 계속 진행되는 여전히 크나큰 미스터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어떠한 장소의 식물 군락이 변화하는 생태천이 과정은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선순환 고리와 같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아마도 쓰레기더미로 큰 산을 이루었던 난지도가 오늘의 하늘공원으로 환골탈태한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초꽃과 영지 靈芝가 지천으로 피어나던 섬이라서 이름도 고운 난지도 蘭芝島로 불렸다. 홍제천, 모래내에서 흘러 내려온 모래가 쌓여 섬이 됐다. 겨울철 철새 도래지였던 이곳이 1978년 3월 서울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됐다. 이 매립장엔 1993년 3월까지 15년간 9200만 톤, 하루 트럭 3000대 분량의 쓰레기가 지상 100미터 높이로 쌓여 거대한 인공 쓰레기 산이 됐다.

이곳이 안정화 사업 추진으로 다양한 동·식물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땅으로 복원됐다. 2002년 5월 월드컵공원으로 재탄생 해 평화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한강난지공원으로 나뉘어 푸른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느끼게 하는 테마공원이 됐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신비와 생명을 풍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