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이 덤벼드는 사람에게 흔히 간뎅이가 부었다고 한다. 반면 겁이 많으면 간이 콩알만 하다고 한다. 확실히 나는 간이 작다, 콩알보다는 크겠지만 간이 정말 작다. 언젠가 검진을 받는데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니터를 주시하더니 한쪽 간이 너무 왜소하다며 모르고 있었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소리라는 대답에 아마도 간에 문제가 없어서 알려주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은 말라는 게 아닌가. 그러니 나는 과학적으로 간이 작다는 것을 검증받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눈도 크지 않은데 겁이 많았던 이유를 과학적으로 해명받은 셈이다.

라떼 한 잔. 우리의 연배가 다 그렇듯 나 역시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랐다. 딱히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놀이 삼아 산딸기도 따고, 소나무 순을 꺾어 송기도 긁어먹고 그도 심심하면 개구리도 구워 먹었다. 그런데 개구리를 구워 먹는 일은 역할 분담이 필요했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떼어내는 사람, 집에서 소금이나 성냥을 밀반출하는 사람, 불을 피워 굽는 사람 등등. 그때마다 나는 밀반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떼어내는 일도 겁나고, 더구나 성냥을 켜는 일은 가슴이 콩당거려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고는 싶고. 결국, 다른 친구들이 가장 꺼리는 성냥 밀반출이 내게 주어진 미션일 수 밖에. 가끔 나 말고도 성냥 밀반출의 모험을 하는 친구들은 의기양양하게 성냥불을 켜는 특권을 행사했는데 나는 한번도 그러지를 못했다. 성냥개비에 퍽하고 불이 붙는 순간이 너무 겁이 났다. 겁을 먹으니 불이 잘 붙지도 않고, 불이 붙어도 데일 것만 같아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나는 밀반출 전문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금도 오래된 기억의 자투리로 남아 있는 회색빛 트라우마다.

이제는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불 피울 일도 없으니 불을 켜는 일로 간을 조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특별예배를 위해 촛불을 켜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가스라이터가 성냥을 대신하지만,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하물며 불꽃 크기가 조절되지 않은 가스라이터를 켜는 일은 내게는 재앙이다.

더구나 나는 가스와는 악연이 많다. 물론 가스라이터와는 다른 가스이지만 어쨌든 가스는 별로다. 자취생활 하는 동안에는 종종, 심지어 예비고사를 치르러 가서까지 연탄가스 중독으로 고생을 했으니.

어디 그뿐인가? 목회 초년생 때, 비교적 여유가 있던 동료가 영양보충을 시켜주겠다고 데려간 식당에서 가스에 불을 붙이는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넘실대 머리까지 그슬렸으니 말이다. 정말 내게 가스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가 분명하다.

어느 연예인의 사연으로 관심을 끄는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은 1938년 작가 패트릭 해밀턴이 연출한 스릴러 연극 ‘가스등 Gas Light’에서 유래된 심리학 용어라고 한다.

이 연극은 남편이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하는 것은 물론 정신병자로까지 몰아세우고,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 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로빈 스턴은 여기에 착안하여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 부인 등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일컫는 개념으로 이 용어를 정립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스라이팅은 타인에 의해 규정된 대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심리 조작술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방역 당국의 통제가 장기화되자 사회적 긴장감이 느슨해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만은 예외인 것 같다. 여전히 출석율은 저조해 허락된 인원도 채워지지 않고 예배 외에는 모일 생각도 못 한다. 아예 지난해 봄 이후 한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분들도 많다. 두려움이 원인이다. 정부가 예배에서 감염된 경우는 거의 없고, 교회 관련도 대부분 예배 후 사적 모임을 한 경우라고 발표하였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분들도 커피숍과 식당과 마트에는 열심히 드나들고 지인들과도 몰려다닌다. 교회에서 아니라 밖에서 마주치는 교인들도 많다. ‘교회가 미안합니다’라고 내걸었던 사람들처럼 우리 스스로 ‘교회가 코로나 감염원’임을 확신하는 듯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방역 당국이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만은 분명히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이름하여 가스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