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2011년에 지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장흥으로 귀촌하기를 결심하신 뒤 만들어진 20평 남짓 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번듯한 새 집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낡아 몇 해 전부터는 틈이 생기고 손 볼 곳들이 생겨났다. 모기장을 새로 달고, 수도꼭지도 바꾸고, 작은 데크의 칠도 다시 해야 했다.

그러다 작년 초부터 부쩍 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건 화장실 줄눈의 곰팡이들이었다. 락스는 사용하기 싫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친환경 세제를 써서 쪼그려 앉아 수세미로 바닥의 줄눈을 꼼꼼히 닦아 왔는데, 그렇게 해도 어느 순간부턴 까맣게 점점이 물든 곰팡이들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화장실이 오래되면 줄눈이 많이 깎여나가면서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 했다. 업체를 불러 줄눈 공사를 할까 하다가 직접 줄눈을 보수하는 액상 용품이 있어 시도해보기로 했다.

기존의 줄눈을 제거하고 새로 칠해야 잘 자리를 잡는다고 했는데, 그 정도까지의 기술과 여력은 있지 않아서 패어진 홈에 칠만 했다. 그 정도만 해도 칠하고 타일로 번진 것을 닦아내며 작업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고, 그 뒤로도 군데군데 보수해가며 며칠을 더 보냈다. 과정이 힘들었지만 다 마쳤을 땐 엄청 기분이 좋았다. 칙칙하고 군데군데 거뭇거뭇했던 줄눈이 뽀얘지니 화장실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원래의 줄눈을 제거하지 않은 탓에,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홈의 깊이가 얕았던 부분에 칠했던 보수제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거나 손빨래를 하고 나면 쌀알 크기만 한 조각들이 화장실 바닥에 돌아다녔다. 거기다가 6개월 즈음 지났을 때에는 곰팡이가 안쪽에서부터 다시 올라왔다. 얘네들은 윗표면을 닦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덮어버리는 것은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오래 묵은 무언가를 벗겨내기 위해서는 비용이든, 시간이든, 에너지든, 더 많은 것, 더 근본적인 것을 요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1-22)”

사람들이 예수님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하신 말씀이다. 내게도 날마다 하는 신앙 행위,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습관처럼 굳어진 것들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아버지와 10~20분 정도 아주 짧지만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한두 장 읽거나, 식사를 할 때 기도를 먼저 드리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가거나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마음의 때가 완전히 씻기지 않는다. 그 모든 행동들을 하는데도 충만함과는 한참 거리가 먼 헛헛함이 가슴을 메우고 있을 때가 있다.

레위기를 읽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많은 제사를 드리며 속죄 의식을 치르는데 왜 굳이 대속죄일이 있어야 할까 궁금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현재 내 삶에 대입시켜보면 그 날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쌓여진 일상의 시간들 속에서 무뎌진 마음을 밑바닥부터 뒤집어엎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익숙해져버린 생각과 행동의 방향과 틀을 흔들어, 청산할 것들을 청산하는 작업이 분명 필요하다.

마음의 밑바닥이라는 건 사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무언가와 타협해서 모호해진 경계일 수도 있고, 무언가에 향한 욕망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간에 어느새 침착되어 한 덩어리처럼 얽혀있는 마음속 곰팡이들, 이들은 덮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드러내고 들어내야 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