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 벌로 센터에 나오지 못하던 병우가 문 앞에 서서 얼굴을 가리고 서있다. 선생님들이 들어오라고 해도 얼굴을 가린 채 못 들어온다. 평소에 멋진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가장 많이 받던 병우다. 멋진 모습에 생채기가 났으니 부끄러울 만도 하다.

다운증후군인 병우는 지금 중학교 2학년이다. 1학년 때는 학교 친구들에게 침을 뱉고 물건을 던져서 학교나 센터에서 선생님들이 버릇을 고치느라 애를 먹었다. 센터에서는 늘 멋진 병우인데 학교에서만 그런 행동을 해서 선생님들 모두 놀랐다. 그 행동이 없어지자 지난 1년은 학교 친구의 책이나 공책을 가방에 담아 온다. 심지어는 친구 핸드폰을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 센터 선생님들이 학습지도를 하다가 병우 가방에서 다른 친구들의 교과서를 자주 발견했다.

병우의 행동은 보통 도벽과는 다소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거나 자신의 기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물건을 숨긴다. 병우는 나름 소심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 우리 센터 선생님들은 병우의 소심한 복수에 귀엽다고 웃음을 지을 수 있지만 매번 당하는 당사자들에겐 황당하고 짜증날 일이다.

월요일 하루 종일 교육연수가 있어서 센터 선생님이 나오질 못하셨다. 연구소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센터에 오자 병우의 가방에서 다른 친구 책이 있다고 급식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그러더니 공익 선생님도 교과서 3권을 들고 오신다. 그 동안 한두 권씩 빼 놓은 책을 여기저기서 갖고 오신다. 병우 책보다도 더 많은 교과서인데 모두 이름이 다르다.

병우를 데리고 내 것, 남의 것을 가려내고, 이번엔 벌칙으로 3일 근신을 해야 한다고 하자 병우가 고개를 숙인다. 다른 친구들이 교과서가 없어서 불편했을 것이고, 선생님께 준비물 못 챙긴 이유로 꾸중을 들었을 것이라고 똑똑한 병우가 조목조목 설명한다. 병우는 3일 동안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 맛있는 저녁 급식도 먹을 수 없고, 화요일 집단 운동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가 없고, 수요일엔 한자와 영어도 할 수 없다고 교육 프로그램 시간표대로 스스로 정리해서 말한다.

병우 일을 해결하자 센터의 급식카드인 체크카드가 없어졌단다. 급식선생님이 마트에서 장을 보시고 영수증과 카드를 함께 두셨는데 카드만 없어진 것이다. 센터 곳곳을 찾고 서랍이란 서랍을 다 뒤져도 카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분실 신고를 하려고 전화를 드는데 커피드림 일을 마치고 경수씨가 들어오면서 센터 문고리에 카드가 있다고 전해 준다. 체크카드와 함께 들어 있던 적립카드였다. 그리고 경수씨 말로는 현성이가 바로 내려갔다고 한다. 우리는 분실신고를 하지 않기로 하고 급식비를 운영비 통장으로 옮기기만 하고 일을 마무리 했다.

중학교 3학년인 현성이는 동생이 6명이다. 동생이 몇 살인지 어느 학교나 어린이 집을 다니는지 모른다. 현성이는 무지 많이 먹고 늘 배고프다고 한다. 너무 끝없이 먹어서 탈이 날까봐 적당히 먹으라고 한다. 굶주린 배 만큼 엄마의 애정이 그리운 아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무서운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자를 근본적으로 적대시하고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성향이 강하다. 초등학교 때는 여자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했다고도 한다.

다음 날, 현성이는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전 날, 퇴근길에 학교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현성이가 가져간 것이 확실한 것 같으니 선생님이 직접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우리는 다 모르는 것으로 하고 센터 선생님만 아는 것으로 할 테니 카드를 돌려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달라고 부탁했다. 도벽이 있는 현성이가 체크카드를 돌려주지 않을 경우에는 센터 이용을 그만하게 해야 할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다. 다행히도 다음 날 현성이가 센터 선생님과 이야기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잘못 했다고, 사먹고 싶은 것이 많아서 가져갔다고 고백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선생님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 센터의 친구들은 모두 마음을 나눌 줄 알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안다. 네 것 내 것 없이 다 함께 쓰고 나누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천사 같은 병우의 소심한 복수가 허용되는 세상, 도벽이 심한 현성이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물건이나 먹을 것을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현성이에게 미안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