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울고 있습니다. 절망과 침묵에 빠졌습니다. 희생된 학생들, 또 다른 피해자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국가적 시스템에 대해 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무디어진 양심과 의식, 사회적 국가적 안전 불감증, 돈을 위해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천박한 자본주의 풍조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똑같이 되풀이 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성 응급 대책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과부의 지시로 대부분의 학교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취소하고, 추모와 안전을 이유로 학생들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만있어라!’ 선장과 어른들이 승객들과 학생들에게 한 말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세월호에 빠진 대한민국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중략) 그렇습니다. 지금은 가만있을 때이며, 또한 가만있어서는 안 될 때이기도 합니다. 슬픔을 당한 유족들 옆에서 우리는 가만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되기 위해 용기를 내고 일어서서 행진해야 할 때입니다. 울고 있는 친구들을 일으켜주고 얼싸안고 함께 걷자고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산돌학교는 <우리 땅 밟기>를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아니 오히려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걷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약하고 작지만, 걸음걸음마다 친구들을 생각하고, 격려하고, 희망을 빌며 걷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 우리가 지켜야 할 사회를 위해, 우리 스스로 희망이 되기 위해 걸으려고 합니다......”(하략)

위에 소개한 장문의 글은 산돌학교가 <우리 땅 밟기>를 떠나기 전 부모들께 드린 글입니다. 5박6일의 걷기 수업 내내 두 가지 문제에 붙들렸습니다. 하나는 안전과 모험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과 생명에 대한 생각입니다. 청소년 아이들을 온실의 화초처럼 품안에 껴안고 있다고 안전한 것은 아닌데, 그럴수록 점점 더 약해질 것인데, 왜 이렇게 어른들은 어리석은 선택만 할까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니까 안전은 각자 책임져야 하고 그러다보니 점점 아이들을 가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둘 것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안전이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산돌은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행사 자체가 모험입니다. 매일 매일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조심 또 조심하지만 매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온실이 아닙니다. 그러니 위험을 겪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교육적인 것이 아닐까요?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크게 얻은 수확은 학생들의 생기발랄한 생명의 기운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오전에는 단원고 친구들을 생각하며 침묵으로 걷고, 오후에는 친구들과 더불어 걸으며 학생들은 싱그런 생명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힘들고 지치다가도 금방 깔깔거리며 되살아나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 생명력은 빛처럼 주변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저는 보았습니다. 그들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의 기운이, 무기력의 기운이, 죽음의 기운이 물러가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 하나하나는 작은 반딧불이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작지 않은,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영웅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우리의 탐욕과 무지의 죄 값을 대신할 누군가를 찾아내 처벌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산돌친구들이 보여주는 저 생명의 힘 그 자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깨닫습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돈과 탐욕을 용인한 우리 자신이 이 사건의 가장 큰 책임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 스스로가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 외에 이 사건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은 없다는 것을 단원고 친구들이, 그리고 산돌친구들이 보여주었습니다. 더 깊이 우리 자신에게로 들어가야겠습니다. 단원고 친구들과 유가족들 생명의 힘으로 의연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눈앞에서 소중한 생명들을 태운 배가 선미만 남긴 채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누구 하나 어쩌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경험을 온 국민이 하게 되었다. 얼마 후 눈앞에 보이던 선미도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계속되는 시신 발견 소식에 경악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 급성장을 자부하며 뽐내던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세월호 사고가 난 다음 날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을 두고 나올 수 있어요?” 아이들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내 생각에는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을 두고 나오신 게 아니라 먼저 나온 아이들을 돌보셔야 해서 다른 선생님들보다 앞서 나오신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수학여행 갈 때 교감 선생님이 인솔자가 되어 제일 앞에서 가시잖아요. 그러니까 사고 후에 배에서 빠져 나온 학생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니까 앞서서 나오셨을 거에요.” 그제서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네요.” “그럼,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을 두고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사이가 보통 끈끈한 사이가 아니거든요.” 나는 이렇게 세월호에서 구조되신 교감 선생님을 대변했다.

그런데 다음 날 우리는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결국 교감 선생님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멀고 먼 길을 떠나는 선택을 하셨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시간들을 보내셨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그 뒤로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하며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노란 리본만 거리에서 나부끼고 있으며 “무사생환을 기원합니다.”라는 글귀가 마음을 아프게 때리고 있다.

나는 자꾸 며칠 간 바다 위로 보였던 선미 부분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것은 마지막까지 구조를 기다리며 우리에게 손 내미는 사람들의 애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왕좌왕하며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선미 부분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우리의 희망이 가라앉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 택시 기사의 하소연이다. 한 달간 택시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쉬었다고 한다.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승객들에게 이러 저러한 일들로 상처 받으며 지내는 중에 세월호 사건을 접하게 되자 모든 의욕이 사라져서 도저히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이제 우리나라는 망했어요.” 나는 학생의 말을 듣자마자 “아니에요, 망하지 않았어요.”라고 외치듯 말했다. “망한 거 맞아요. 망한 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있는 한 망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지금처럼 잘 크면 되는 거에요. 그러면 형, 누나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거에요. 지금은 안타깝고, 미안하고,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나는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이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나는 ‘그런 일이 있으면 안된다’는 절박함과 ‘우리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성장하면 안된다’는 안타까움이 뒤섞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던 마음이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뭔가에 의해 수렁에서 끌어올려지는 듯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아, 참 아이들이 있었지. 지금도 묵묵히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어른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열심히 자기 본분을 다하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있었지.’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세월호에서 많은 아이들을 잃었다. 우리의 동료들을 잃었다. 그리고 수많은 가족들을 잃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호만큼은 속수무책으로 침몰하게 할 수는 없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만큼 소중한 교훈들을 얻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로 인해 얼마나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면서 각자 책임의 막중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책임도 아닌데 생업을 뒤로 하고 나서서 슬픈 자들을 위로하며 함께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삶의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면서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배워야 하겠다.

우리의 희망인 아이들을 위해 이제 더 이상 네 탓, 남 탓만 하지 말고 저마다 바로 서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온 국민이 힘을 내야 한다. 어른들의 말이 아닌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고 배우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어른의 모습으로 당당히 서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거듭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