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2년이 넘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입으시던 옷가지만 대충 정리하고 2년이 넘도록 어머님 방의 물건을 정리하지 못했다. 우리가 서로 바쁘고 한편 게으른 탓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남편이 속상해할까 염려해서였다. 가끔 남편이 농담처럼 우리 엄마에게 “장모님, 저 이제 고아에요.”라고 말을 할 때 ‘엄마가 그립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나 또한 “나는 한부모 가정이거든” 하면서 장난으로 넘겼지만 어머님의 빈자리를 무척 허전해 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까 이전보다 가족끼리의 모임도 줄었고 찾아오시던 손님도 줄었다.

이제는 양쪽 집안에 어른은 우리 엄마만 남았다. 혼자 사시는 엄마라서 자주 들러야 하지만 친정엄마는 고아라고 말한 사위 챙기라며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만나자고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말마다 친정엄마에게 들러서 함께 먹고 자고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그 당시 엄마의 우울증이 심해서 혼자 계시게 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팔순이 넘었지만 경로당 총무도 하시고 할머님들과 즐겁게 잘 지내신다. 가능한 혼자서 병원도 다니시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시려고 최선을 다 하시는 것 같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게 삶의 목표라고 하시며, 가끔 가전제품이나 이런 저런 물건을 오작동해서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청하시기는 한다.

얼마 전에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 <나는 길들지 않는다>에 대한 서평을 보면서 인간의 죽음과 앞으로 있을 우리 엄마의 죽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루야마 겐지는 야생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가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사는 야생 동물들은 자연사할 확률보다 느닷없는 죽음을 맞을 확률이 훨씬 높고 자연환경의 변화나 천적의 먹잇감이 되어 죽을 위험성이 높다고 말한다. 저자는 야생 동물들의 죽음이 늙어 죽는 인간의 죽음보다 숭고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힘으로 단 1m도 움직일 수 없는 노쇠한 몸을 타인의 도움과 투약과 수술과 방사능과 간병 등 온갖 것에 의존해 간신히 이 세상에 붙들어 두고 있는 자에게 감동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한다. 인생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자고 하는 이야기를 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육체는 비록 늙었어도 정신의 젊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니까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진정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 외에도 사회적 관계 안에서 어떤 인간으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지 늘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적당히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만약에 우리 엄마가 1m가 아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세상을 산다고 해도 살아있는 것 그 자체로도 나에게는 감동이고 축복이다. 육체도 늙고 정신도 함께 늙어서 야생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산다고 해도 엄마에게 고통만 없다면 오래 함께 있고 싶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어머님 방을 정리해서 손님을 맞기로 했다. 어머님 사진과 글, 작은 수첩과 메모장, 남편은 그 물건을 보면서 어머님을 추억한다. 그 안에 어머님의 정신의 젊음뿐 아니라 육체의 아픔과 고통,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움 등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 단지 어머님이 쓰시던 물건이 아니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내 남편의 흔적에 남아 어머님은 천수를 누리시는 것이다. 비록 어머님이 쓰시던 물건은 방에 없지만 우리 집에 온 손님은 한 겨울에 ‘어머님 방’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 곳에서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루를 묵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