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에 얻은 막내딸 중학공부 시킨다고
월사금으로 쌀 두말 멜빵 걸어 등에 지고 십리길 가셨지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오신 아저씨
자식 낳으면 면사무소 가서
당신 손으로 직접 출생신고 하시는 게 소원이셨대

여섯 아들 두 딸 키워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면서
때마다 애써 일군 전답 팔아 살림도 냈지
아쉬울 때만 찾아오는 예쁜 도둑들
일 년 내내 자식처럼 키운 푸성귀 지게에 지고
고개마루 훠이훠이 넘나드셨지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던가,
정수리에 하얗게 서리 내리고
여든 넘어 허리가 굽으셨을 때도
“너 좋거든 다 가져가라”
보따리 꾸려 버스 정류장까지 져다주셨지
우렁이 자식들 다 파먹고 빈 껍질 둥둥 떠가는 걸 보고
‘울 엄마 춤추며 간다’ 박수치듯
‘우리 아버지 힘도 장사셔’
다 큰 자식들 좋아라 빈손으로 뒤따랐지

정이 많아 남 어려운 일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던 분
빚보증으로 한 해 농사지은 쌀가마니 다 넘겨주고
마나님 지청구 귀에 못이 박혀도

여전히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듯이
청상과부 하소연 거절 못하시고
늘그막에 노후대책 통장까지
담보대출 받아주고 빈털터리 되셨지

다주고도 마냥 어린 아기처럼
해맑게 웃으셨던 일귀신 할아버지
일평생 궂은 일만 도맡아 하신 분
남은 건 거친 손마디와 우렁이 껍질처럼 자빠진 손톱

오지 않는 자식들 기다리며
툇마루에 앉아 고개 너머 바라보며 해바라기 하시던 할아버지
그날도 이른 새벽 버릇같이 마당 쓰시고
지게 옆에 싸리비 세워둔 채
가신 단 말도 없이 먼 길 홀로 가셨네

늘그막에 노인대학 입학하시어
졸업식 때 쓰신 사각모 영정사진
해맑게 웃고 계시네

80년을 함께 한 할아버지 빈 지게
오늘도 기와집 대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네

이승에서 못 푼 한 저승에선 푸실까
태어나 얼굴도 못 뵌 아버지 만나
행복하게 살고 계실까
그 나라에선 지게 대신 책가방 메고
학교에도 다니고 계실까

그 나라에선 소원대로
출생신고도 손수 하시고
은행가 출금전표도 직접 쓰실까
때국물 흐르는 잠뱅이도 벗어버리고 비단 옷도 한번 입어 보실까
멋진 시계도 차고 계시다 시간 물어보는 사람 있으면
왼 손 손목 올려보며 알려 주시면 좋겠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