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이렇게 나에 대해 알아야 해요. 힘들어요.”
“뭔가 나를 결정하고 정해진 유형에 나를 맞춰야할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에니어그램 수련을 하는 이유를 더욱더 모르겠어요.”
“에니어그램 수련 말고 다른 걸로 저에 대해 알아보는 배움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내 유형이 무엇인지 잘 모르니깐 답답하기만 해요.”
“유형을 체크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좋지만, 마지막에 에니어그램 프로필 쓰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요.”

볍씨학교는 청소년과정 중 매년 봄 주제여행으로 에니어그램 수련을 다녀옵니다. 자신의 빛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사실 학교에서도 일상적으로 자신의 성장과제를 정하고 노력하고 있는 청소년과정의 아이들이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낯설지는 않습니다. 그동안의 자기 성찰의 내용을 가지고 조금 더 집중적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3번째 에니어그램 수련을 떠나기 전 가장 큰 언니들이 힘들다는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다보면 이번에 처음 에니어그램 수련을 함께 가는 6학년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기에 언니들이 그러나 슬금 걱정을 합니다. 교사도 자신의 상처며, 감추고 싶은 모습들도 드러내게 되는 에니어그램 수련이 힘든 과정임을 알기에 아이들이 3박4일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됩니다.

“저는 한 번도 제가 다른 유형일거라고 의심하지 않았어요. 놀라워요.”
“선생님, 아무래도 저 다른 유형일거 같아요.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한 아이는 새로 찾은 자신의 유형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해석하고 늦은 밤까지 글을 씁니다. 또 다른 한 아이는 에니어그램 수련 마지막 날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작업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새벽까지 새롭게 프로필을 작성하려고 열정을 불태웁니다. 이날 프로필 작성을 마지막까지 한 친구가 잠자리로 간 시간이 새벽 3시였습니다. 힘든 과정이지만 솔직하고 집중력 있게 자신을 돌아본 내용을 잘 정리하려는 아이들의 마음이 참 기특하고 예쁩니다. 지금 당장에 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려고 그렇게나 걱정했나봅니다.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다보면, 아이들이 종종 자신의 자신감 없는 모습, 불안해하는 모습에 쉽게 체크하는 것을 봅니다. 잘난 모습, 자신감 있는 모습에는 자신이 정말 그런지 체크하기를 주저하구요. 청소년기에는 특히나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실제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자신감 없는 마음을 종종 확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교사로서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평소에 성장을 위해 부족한 부분에 대한 조언은 쉽게 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가진 빛들을 비교함 없이 있는 그대로 칭찬해주지는 못한 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교사로서 제 모습을 성찰하지 않고 격정에 휩싸인 채 살아가면 아이들이 가진 빛을 놓치게 될 수도 있으니 저 또한 수련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교육으로 온 에니어그램 수련에서 교사인 제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됩니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아이들 삶의 멘토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종종 말하곤 합니다. 볍씨 교사를 시작했던 첫해를 돌아보면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괜히 긴장하고, 아이들 마음을 잘 모르고는 버럭 화내고,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았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뒤돌아보면 아픈 기억 자리에 앉아서 울고 있는 제 자신이 보입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이젠 제 내면에 상처도 어루만져 줄 수 있고,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자리도 생기고 있음을 느낍니다.

에니어그램 수련을 마무리하고 학교로 돌아오니 학교에서 다른 배움을 하고 있던 어린이과정 동생들이 언니들을 맞이해줍니다. 그러고는 재미있었냐고 묻습니다. 언니들은 재미있었다고 대답합니다. 동생들이 물었던 재미와 언니들이 대답한 재미의 의미는 다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 성장해가는 기쁨을 재미로 느낀 것 같아 참 대견합니다. 학력은 높아가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잘 알지 못하는 이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자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한계를 뛰어넘으며 열심히 배우고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의 빛난 삶의 길에 에니어그램 수련이 좋은 멘토가 되어주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