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도 시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남들은 제가 아들을 두었으니 시어머니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겠지만, 결혼이 늦어지거나 가끔은 결혼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아온 터라 시어머니가 못될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며느리감을 데려오니 몹시 기쁘면서도 어떻게 혼인을 치러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손님’으로 축하는 많이 하러다녔지만, 막상 ‘주인’의 입장에서 혼사를 치른다하니 구체적인 정보나 아는 것이라곤 34년 전에 치렀던 제 결혼식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친정어머니가 준비하신 것을 주인공의 한 사람으로 제 역할 수행만 한 것이지 제가 진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들 혼사를 치른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딸을 결혼시킨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친정어머니께도 물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꼭 필요한 것만, 그러나 혼인의 의미를 진중하게 새길 수 있게...’를 목표로 준비하여 혼사는 그런대로 무난히 치러졌습니다.

외동아들의 혼사를 치르면서 ‘부모로서의 소임’을 다 했다는 만족감이 가장 컸습니다. 혼사 이후, 손자 기르기나 돕기 등등 부모의 역할이 결혼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 시점에선 ‘손님’처럼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제 막 결혼식을 끝냈고, 며느리의 임신 소식은 아직 없으니까요.

아들의 혼사를 통해, 새로운 인생단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저, 아들, 세 가족의 입장에서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다, 이제 며느리의 친정 가족, 며느리와 아들네 가족, 세 가지 모양의 가족 입장을 같이 헤아리는 것이 쉽지 않고 조심스럽습니다. 점점 확장되어가는 가족의 범위, 새롭게 맺어지는 인연들, 그리고 늘 해오던 일에서 또 새롭게 생기는 일들...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늘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생기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실수하고, 어떤 것은 사과하고, 어떤 것은 고쳐가며 사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점점 보잘 것 없는 저를 깨닫게 됩니다. 60년 가까이 살았는데 아직도 배워야할 것도 많고 어떤 것은 내가 뭘 모르는 지도 모른 채 죽을 때 까지 배우고, 또 배우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득하기도 합니다.

저는 직업상 사람들에게 공감해주거나 조언하는 일을 많이 하고 삽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많이 배웠고,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저 자신도 마음이 힘든 시절을 오랫동안 보냈기 때문에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합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늘 부족한 저를 느낍니다. 책으로 배웠던 일들이 실 생활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공부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지만, 제 아들의 혼사처럼 안다고 생각했으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소하지만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겪으면서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부가 바뀌어 새로운 인물들의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놀 때 더 열심히 공부했고, 주어진 일들을 남들보다 더 잘 해냈고 업적도 인정받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이 권세를 얻게 된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은 중심에 놓고 다른 사람의 업적은 얕잡아 보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한 권세를 얻지 못한 분풀이로 무책임하게 비난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주인공으로만 사는 배우는 없습니다. 각자 인생에서는 ‘주인’인 것 같아도 책임지지 않으면 ‘손님’일 뿐입니다. 주인과 손님이 손잡고 서로 손등을 다독이고 책임을 나누어 가며 사는 세상, 그런 우리나라가 되기를, 공동체가 되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