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당에 기도로 유명한 대주교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성당에 나가 평소 습관처럼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를 시작하자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 하는 음성이 들렸다. 그 순간 너무 놀란 대주교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웰스 H. G. Wells의 “대주교의 죽음”이란 단편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형식적인 기도, 습관적인 기도, 믿음 없는 위선적인 성직자를 비웃고 경계하는 교훈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심오한(?) 교훈이나 문학성보다는 그 대주교에 동질감을 느낀다. 웬 엉뚱한 소리냐고? 나는 대주교의 근처에도 못가는 시골 목사이니 명성이나 인기가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나만 새 가슴이요, 간이 콩알인 줄 알았는데 대주교씩!이나 되는 분도 그러했던 같아 나 스스로 위로가 된다는 말이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교인들이 목사에게 거는 기대는 한계치가 없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 목사는 겁도 없고 비위 脾胃도 무척이나 좋은 줄로 안다. 고춧가루와 소금이 가미된 커피, 먹다 덜어주는 국수, 때가 덕지덕지 묻은 물컵의 경험은 웬만하면 다 경험하는 목사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그래도 그 정도라면 괜찮다. 목사는 특별한(?) 사람이라 겁도 없는 줄 안다. 지금은 거의 병원에서 임종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집에서 운명하고, 방에다 안치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마치 잠자듯 운명하는 분도 있지만, 쳐다보기 무서울 만큼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운명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경우 유가족도 시신을 모신 방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예도 없지 않다. 더구나 시신의 부패가 급전하는 경우는 시취 屍臭까지 심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예배라도 할라치면 목사가 시신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앉기를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목사라고 다 강심장도 아니고 코가 막힌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장례식 잘하고 염 殮 잘해 칭찬받는 목사가 되려면 충농증이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빵점이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데다 냄새에 민감하고 겁많은 순서로는 어디서든 1등이다. 더욱이 어려서부터 목사 안수를 받고 몇 년이 지날 때까지 시신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게 위기가 찾아 왔다. 권사님들이 중환자가 있는데 심방을 가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집 떠나 살다가 다 죽게 되어 아들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서. 그러니 가서 기도도 해주고 전도도 하자는 이야기였다. 내가 치유의 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목사가 전도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별로 맘이 내키지는 않지만 어쩌랴 교인들이 가자는데. 억지 춘향이라던가. 속마음을 감추고 담대한 척, 경건한 척 앞장을 섰다. 아뿔싸! 문을 연 내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누워 있는 환자는 해골이 다된 험한 형상에다 입과 코는 물론 온 몸에서 연신 고름같은 분비물이 흘러내리고. 그러니 당연히 악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서둘러 어찌어찌 예배와 기도를 마치고 바쁘다는 핑계로 서둘러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교인들이 이번에는 그 집에서 원한다고 또 가잖다. 알고 보니 그 환자는 젊어서 그 교회 교회학교 교사까지 한 사람인데 어찌 된 셈인지 교회를 떠나 객지에 나갔다가 박수무당, 그것도 책임자급으로 활동하다가 불치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어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 스토리가 왠지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날, 그 환자에게 주님께 돌아올 것을 권했더니 자기는 너무 죄를 많이 지어 안 된단다. 내친김에 용서하시는 주님을 전했더니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영접했다. 그날 밤, 그 집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달려갔더니 놀랍게도 온몸과 코, 입에서 고름(?)이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예배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이 땅에서는 갚을 길이 없지만 천국에서 목사님을 위해 꼭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찬송을 들으며 잠자듯 눈을 감았다. 한없이 평화로운 얼굴로.

장례식 후 자녀들이 찾아와 이야기했다. “목사님이 다녀가신 후, 아버지가 그날 밤 두 번이나 아들을 부르더니 누가 방에 우물을 파서 깨끗한 물에 내가 잠겨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부터 흐르던 고름이 멈췄다”고. 그날 이후 나는 시신을 두려워하지도 냄새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제 목사 맞죠? 그 가정 전도가 됐냐고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한 달쯤은 나와 주더군요. 전도는 체험이나 감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