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재산 정도에 맞게 힘 닿는 데까지 자선을 베풀어라.
네가 가진 것이 적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적은 대로 자선을 베풀어라.
(토비트4,8)

한 소녀가 빈 종이컵을 들고 육교 계단을 힘겹게 올라갑니다. 헝클어진 머리, 지저분한 몰골, 허기에 지친 모습이 금방 쓰러질 듯합니다. 육교 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컵을 든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합니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소녀의 눈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마치 천사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빛나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들의 하얀 피부, 깃털처럼 가벼운 모습, 그와 대비되는 자신의 삶의 무게가 절망처럼 다가옵니다. 나도 이들처럼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소녀는 속으로 눈물을 삼킵니다. 나는 초라하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야. 나는 여기에 왜 왔을까? 나는 여기에 속한 사람이 아닌데. 몸의 상처 따윈 신경 쓰지도 않아. 나도 제대로 살고 싶어. 온전한 몸을 갖고 싶어. 빛나는 영혼이고 싶어. 나 좀 돌아보아 주세요. 나 같은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해도 당신들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모를 거예요.

그때 한 여인이 지나갑니다. 손에 빵 봉지를 들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픈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다가갑니다. 빵 좀 주세요, 손을 내밉니다. 여인은 성가시다는 듯 밀쳐냅니다. 지친 소녀는 멍하니 멀어져가는 여인을 바라봅니다. 찬란한 사람들은 그렇게 또 소녀를 피해 달아납니다. 여인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냅니다. 그때 돈뭉치가 떨어집니다. 순간 소녀의 눈동자가 커집니다. 유혹도 커집니다. 돈을 손에 들고 주저합니다. 여인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소녀는 일어나 달리기 시작합니다. 여인을 소리쳐 부릅니다. 그리고 돈을 전해줍니다. 여인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옵니다. 그리고 소녀도 환하게 웃으며 빵을 먹습니다. 무엇이 그대를 행복하게 만듭니까? 무엇을 하든, 어떤 상태이든, 그대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노래와 짧은 영화는 그렇게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https://youtu.be/ he5BuzuEt00)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검찰과 청와대와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벌어지는 광기와도 같은 적대감에 시민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사람 냄새가 그립습니다. 작고 소박하지만 우리가 잊고 살았던 ‘기생충’ 같은 이웃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에서 잊혀진 사람들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어떤 경제학자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통계적으로 제시합니다. 상위 10%에 속한 가정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상위 10%에 편입될 확률이 87%에 이른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위 10%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 하위 10%에 머물 확률도 87%를 상회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분노와 아픔과 개혁에의 의지는 여기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가진 자들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해야합니다. 구조적으로 불공정한 사회에서 정의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불공정할 것인지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개혁을 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자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혁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개혁은 지금 내가 배고프고 지친 그림자 이웃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더 테레사는 어느 기자와의 대담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세상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은 것은, 국가나 체제가 잘못되었거나 음식이 모자라거나 복잡한 국제 관계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당신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혁의 핵심은 타인이 아닙니다. 제도도 아닙니다. 나 자신입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자선과 연민과 사랑을 갖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크게 일어나야 공정도 공정함이 되고 정의도 정의가 됩니다.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 깨어있는 시민이며 이 나라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가진 것도 힘도 없습니다.”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해 요청할 때, 특히 사회적인 공익을 위해 나서야할 때, 우리가 거절하는 이유로 쉽게 생각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이 소녀도 자선을 통해 그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작은 자선입니다.

조국 장관에 대한 기대는 그가 청문회를 통해 자신이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특권을 당연시하고 소외된 계층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깊이 느꼈다고 고백한 점입니다. 검찰처럼 자기 조직의 특권을 위해 동일체 원칙을 내세워 국민들과 대통령까지 지배하려는 잘못된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버려진 계층들을 한 몸으로 끌어안고 그 고통을 나누려는 동일체 원칙을 가진 정치지도자로서의 행보를 장관에게도, 대통령에게도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즉생 생즉사, 충무공의 결심을 두 분께 전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