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트릭스>에서 인간은 가상 세계를 현실이라 착각하고, 진짜 현실에서는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살아갑니다. 현실 세계의 리더 모피어스는 가상현실에서 만난 네오에게 두 개의 알약을 건네줍니다. ‘파란 약’과 ‘빨간 약’. 파란 약을 먹으면 가상 세계에서 안락하게 살다 죽습니다. 빨간 약은 불안하지만 참된 현실로 가게 해줍니다. 네오는 빨간 약을 먹고 깨어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소마 soma’라는 알약이 나옵니다. 과학문명이 이루어 낸 유토피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태아 때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계급으로 나뉩니다. 최고지도자에서 하수도 청소부까지 결정됨은 물론 직업, 취미, 적성과 같은 사회적 운명까지 정해지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자기 삶에 만족하게끔 교육을 받습니다. 세뇌지요. 성인이 되어서는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는 음악을 듣게 하고, 밤마다 최면을 걸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주입시킵니다. 의심이 생길 땐 소마 한 알이면 충분합니다. 행복감이 온몸에 퍼져 다시 멋진 신세계의 부속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교회에도 통용되는 약이 있습니다. 그 약의 이름은 ‘믿음’입니다. 오직 복과 구원을 위한 믿음이죠. 삶에서 겪는 불행, 불만, 고난 등 모든 문제는 믿음이 없는 탓입니다. 목사는 간단하게 ‘믿음’을 처방하고 성서를 인용해 그 효과를 강조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질문도, 의심도, 불만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복용’만이 있을 뿐.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상에 눈 감고 귀 막은 채 그들만의 ‘멋진 신세계’인 교회에 기꺼이 유배된 채 살아갑니다. 목사가 처방한 약을 열심히 복용하는 이 약쟁이들의 공동체를 사람들은 ‘개독’이라고 부릅니다.

참된 믿음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지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사후 세계와 종말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애정 하는 신약학자 마커스 보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다’라는 말에는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뜻뿐 아니라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도 들어 있었다. 즉 ‘믿다’와 ‘사랑하다’는 동의어였다.” 교인들이 믿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이생의 복과 사후의 천국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이라면 하나님이 애끓게 사랑하는 세상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수단으로 형통과 영생만을 쟁취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 임한 천국을 노래하지만 이청준 선생의 소설 제목처럼 ‘당신들의 천국‘이며, 인문학자 김영민 선생이 말한 ’당신들의 기독교‘일 따름입니다. 14세기의 신비가 루이스브렉의 요한은 자신의 내적 평안과 영적 회복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두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고 믿지만 실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사악하고 해로운 존재들”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현실을 외면하는 영적 열정은 ‘영적 정욕’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당신들의 멋진 신세계’, ‘당신들의 천국’은 될 수 있을지언정, ‘우리들의 천국’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을 약은 자명합니다. 빨간 약인 참 믿음입니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합니다.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는 교회에서 탈퇴해야 합니다. 모피어스가 건네 준 빨간 약을 먹고 가상 세계에서 깨어난 네오는 엄혹한 현실에 몸서리치지만, 현실을 구원할 메시아가 됩니다. 예수는 천상이 아닌 이스라엘의 척박하고 천대받는 갈릴리에서 메시아가 되셨습니다. 교회도 부디 땅의 예수를 따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