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격을 지닌 존재입니다. 대상과의 관계에서 나를 인식하는 존재,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를 인식한다는 것은 외부의 간여 없이 나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뉘우치고, 성찰할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인격을 지닌 존재이기에 겪게 되는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죄는 아담과 이브의 부풀려진 자기인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다른 것들은 다 먹어도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독일어 주석 성경은 ‘선악’을 도덕적인 의미로서의 선악이 아닌 ‘모든 것’으로 해석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 이해가 안 되는 인간은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순종했으면 좋을 텐데, “왜 먹지 말라고 했지?”라며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 틈을 뱀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뱀은 저들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묻습니다. 이브가 대답합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 가지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지 ‘만지지도 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은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창 3:3b/개역)라고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도 있는 이중의 의미로 대답합니다. 여자는 이렇게 본래의 말에 자기 말을 덧붙이고 비틂으로서 핑계 댈 구멍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그러자 뱀이 대답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않는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이야!” 여기서 뱀은 파충류인 뱀이 아닌 자기인식의 거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아담과 이브가 자기 말을 덧붙이거나 비틀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만든 데 있습니다. 죄악은 이렇게 자기 말을 덧붙이기도 하고, 본래의 말에 이중의미를 지니도록 비틂으로서 책임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열어놓습니다.

지난 3월 13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해방 후 반민특위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말이 문제가 되자 변명하기를 “제가 비판한 것은 해방후 반민특위를 말한 것이 아니라 이 정부의 ‘반문특위’를 반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아베는 어떻습니까?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판결에 대한 보복조치가 분명함에도 정치 문제를 무역차별로 보복했다는 비난을 피하려 꼼수를 부린 대답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보편성을 설명하기 위해 첫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나, 둘째 아담 예수의 순종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습니다(롬 5:19). 그만큼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다릅니다. 사람들은 왜 순종을 멀리하고 불순종의 길을 가는가? 바로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대상과의 관계에서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은 죄의 두려움에 대해 말하기를 “사망이 왕 노릇”(롬 5:14)한다고 했습니다.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대립함으로써 자신의 피조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창조주가 되고자 함이요, 그리하여 생명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죄가 지배하는 세상은 언제나 음침한 죽음의 권세가 항상 꼬리를 칩니다. 죄는 권력입니다.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권력입니다. 우리는 지금 죽음을 불러들이는 권력의 무한 충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함께 풀어야 할 국정 현안에 자기 말을 덧붙이거나 비틀면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하는 영악한 싸움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한국 정치권은 죄업을 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