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갑작스레 타계한 목사가 있다. 평소 가까이 한 목사고, 아직은 젊다고 할 나이라 가족은 물론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얼마나 황당하고 속상한지 조화만 보내고 장례식장에도 못가고 서성이다 멀리서 온 후배에게 이끌려 갔다. 세상을 떠나는 일이야 본인의 의지가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왠지 화가 나고 심통이 나서 함께 활동하던 단체가 주관한 조문예배에도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뭐 그리 급하다고 가족에게조차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나갔는지 추궁하고 싶은 말도 안 되는 심정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한, 굳이 말하자면 진보적인 활동가였다. 그가 떠나가는 길에 지역 재야단체들이 주관하여 그를 기리는 시간을 마련한 것만 봐도 그가 평소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이도 차이가 나고 출신학교도 다르고 같은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지방’(감리교회 행정단위)도 달라서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나를 만나면 마음을 열고 자기 얘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해서 가까이 지냈지만, 그가 내 마음에 그리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는 떠나보내면서야 알았다.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다.

내게는 좋은 동료요 동생이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주변의 평은 그리 후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데다 성격이 급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쉽게 폭발하는 성격 탓이었으리라. 그러나 내가 겪은 그는 가슴이 따뜻하고 힘겹게 사는 민초들을 안타까워하고 특별히 정의감에 불타는 좋은 목사였다. 그래서 가끔 그 성격 좀 고치라고 하면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 어느 날, 함께 참여하는 모임에 가는 길에 그답지 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마음을 끄집어냈다. 초창기부터 자신이 참여했던 단체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게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오랫동안 같은 생각을 갖고 함께 해온 동료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을 멀리하고 노골적으로 부담스러워하더란다. 그러든 어느 날 깨달았단다. 토론 중에 문득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거친 소리로 분노하고 있음을. 그럴 의제도 아니었고 이유도 없었는데. 다음 날 가까이 지내는 회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목사님, 모르셨어요. 언제부터인가 늘 화를 내고 거친 소리를 해 다들 부담스러워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다 병원을 찾았더니 ‘분노조절장애’가 심하다며 장기간 치료를 권하더란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투쟁한다고 하면서 분노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요즈음은 글 읽기가 겁이 난다. 특별히 목사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의 글이 그렇다. 내가 목사이기에 그러한 글이 눈에 잘 띄는지도 모르겠다. 울분에 가득찬 격문같은 글, 비난과 저주가 가득한 글, 정의의 선지자를 참칭하는 듯한 글, 자신이 함께 묻히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허무는 글들. 나누고 또 나누며, 구별하고 또 구별하는 글들. 그런 글들이 SNS와 각종 인쇄매체는 물은 물론이요, 주류언론(?)에까지 넘치고 있다.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글을 읽기가 어려운 시대라지만 근년 들어 그 정도가 지나친 듯싶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서일까? 그가 말했듯 여러 가지 이유로 각자의 마음에 분노와 증오가 쌓여 습관이 된 것은 아닐까?

이유를 분석하고만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혹시 우리 사회가 속죄양이거나 속죄양을 찾는 사람들로 양분된 것은 아닐까. 내가 오늘 속죄양을 찾아내지 못하면 내일은 내가 속죄양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압도된 것은 아닐까. 줄을 잘못 서면 죽임을 당하던 옛 시대의 편린들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까. 말이 너무 험하고 단언적이다.

나는 그런 글들을 읽으면 마음의 평화가 깨진다. 지나치게 확신이 넘치는 글을 읽으면 공감에 앞서 필자가 위태위태해 보인다. 아무리 잘나봐야 인간 아닌가? 기독교인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인 동시에 구원이 필요한 죄인 아닌가. 누구에게나 어떤 주장에나 양면성이 있다. 빛과 그림자가 있다. 역지사지 易地思之다! 조금은 상대를 이해해 보자. 품위 있는 말(글)을 써보자.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자매 아닌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지만 혹시 그 맹인이 나는 아닐까.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 하느냐”(롬2:21b), 나는 이 말이 두렵다. 그리고 내가 쓴 이 글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