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소련 蘇聯의 겨울이 시작되는 9월 어느 날, 시베리아기차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라지돌로니예 역으로 까레이스끼들은 빠짐없이 나오라는 스탈린의 명령이 떨어졌어요. 불모지였던 연해주를 개간하여 살고 있던 고려인들 172,000명은 무슨 일인지 서로서로 물어도 아무도 대답할 수도, 알 수도 없이 어리둥절해 하며 기차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실 물, 먹을 음식, 따듯한 외투도 준비하지 못한 채 어디로, 얼마동안을 가야하는지도 모르고 흔들리는 기차에 짐짝처럼 꾸깃꾸깃 얹혀 앉아야 했죠. 배설물도 처리할 수 없는 그 안에서 짐승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한 달 이상을 가는 동안 전염병과 기근, 동상 등으로 수 천 명이 사망했어요. 마침내 덜컹거리며 툭툭 떨어뜨리듯 내린 곳은 황량한 사막 땅이었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였습니다.

겨울을 나는 그해에 3-4만 명이 돌아가셨고, 이듬해 봄 호미자루 대신 열손가락으로 언 땅을 파기 시작했죠. 혹시 몰라 주섬주섬 주어온 종자로 농사짓기 시작했고 그 농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19세기 말 함경도에 가뭄이 심하여 두만강을 건넌 우리 선조들은 또 한 번 고향 같은 땅을 떠나 알지도 듣지도 못한 땅에 던져지듯 이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정착을 도와준 현지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어 혼인도 하며 운명처럼 적응하고 살았어요. 1991년 견고하던 소련이 해체되며 공화국들이 독립할 때 국가를 선택하도록 하였고, 고려인들은 부모가 기반을 잡았었던 러시아의 쁘리모스크라고 하는 연해주 그것도 블라디보스톡의 내륙지역인 우수리스크로 4 만 명이 돌아왔어요. 지금도 이 지역에는 2만 명 가량의 우리 민족이 살고 있지요.

연해주에서 우리가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독립운동가 최재형입니다. 페치카라는 단어는 난로를 뜻하는 러시아어라는 걸 아시나요? 안중근의사를 뒷바라지하여 독립투사로 만든 최재형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최재형은 함경도 기근 시 연해주로 건너오던 중 고아가 되어 러시아사람의 양자로 지내며 돈 버는 법을 배웠고 어린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돈을 버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일제에 응전하며 독립을 위한 것이었죠. 훗날 최재형의 딸이 회상하기를 “어떤 아저씨가 집에 와서 날마다 총 쏘는 연습을 했었어요.”그가 안중근이었죠. 무기며, 이동비용이며, 모든 제반 독립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했던 작은 거인 페치카를 기억해주세요.

소련이 러시아가 되고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색깔이 진해지고 옅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우리 민족인 고려인들은 생활력이 더욱 강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현지인들이 주인인 그 땅에서, 아시안이라고 무시하는 그곳에서 지금은 당당하게 기업을 하고, 고위공무원이 되고 대체로 편안하게 살아가는 고려인들, 그들의 자부심은 역시 대한민국에 있지 않을까요? 러시안들이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환전하려고 간 은행에서 만난 백인여성이 전화를 한국어로 하기에 반가워 물었더니 부산에 살고 있다며, 한국이 진짜 좋다고 쌍수를 치켜들며 활짝 웃어 보입니다. 그들은 한국을 비교적 자유롭게 다니는 고려인들을 부러워하고, 이로 인해 고려인들의 어깨가 조금은 올라갈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조선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올해 2020년은 감리교회 연해주선교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1920년 양주삼총리를 선두로 당시 독립운동으로 옥살이를 거듭하던 김영학 목사가 1922년 시베리아선교사로 파송되었고, 부흥을 거듭하여 교인 4,900여명과 81곳의 교회, 36명의 교역자들과 수십 명의 전도자들을 배출하였죠. 후에 일본군에 의해 교회건물도 빼앗겼지만 블라디보스톡에 3층짜리 교회건물도 세웠습니다. 한국이 파송한 선교사 중 첫 순교자가 된 김영학 목사가 사랑한 이 땅 연해주. 지금은 중국의 방천과 북한의 나선, 러시아의 핫산이라는 지역들이 맞닿아 3개국을 품은 이 연해주를 바라보며 왜 이곳에 보내셨는지 다시 한 번 묵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