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2020

 

 

 

 

 

 

 

 

 

 

 

 

  오늘을 바라보며

 

언어는 배려요 소통이다

 

 

 

 

 

 

  한글날에 생각해 보는 우리말과 글의 품격

 

 

 

 





김 슬 옹


세종국어문화원장,
≪한글교양≫, ≪한글혁명≫ 저자
tomulto@daum.net






 


한글날, 인류 문자 꿈의 날

우리나라는 문자 기념일(한글날)을 국경일로 삼은 세계 유일의 나라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세계적인 언어학자였던 미국의 맥콜리 교수는 20여년간 미국에서 한글날을 기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1996년 한글 기록 영화 ‘세계로 한글로’ 시나리오 작가 겸 조감독으로 직접 미국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한글은 한국인만의 자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글에 담긴 보편적 가치를 세계인들이 함께 기려야 한다고 했다. 한글에는 인류 문자의 보편 가치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세계 저명한 언어학자, 문자학자들이 한글에 대해 한목소리로 격찬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한글에 담긴 놀라운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지내는 듯하다.

한글은 당연히 문자 명칭이므로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글은 우리말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고 한글은 말을 담는 그릇으로서 말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글과 우리말의 가치와 품격을 나눠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직선, 점, 원만으로 인류 기적을 선물한 세종대왕

한글은 세종대왕이 단독으로 1443년에 창제를 마무리한 뒤 1446년에 ≪훈민정음≫이란 책을 통해 반포한 문자다. 해례본에 나오는 기본 28자의 글꼴을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자음자 17자

모음자 11자

글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직선과 점, 원만으로 되어 있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어리석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도형에 위대한 문자 과학과 철학, 예술, 만백성의 사상이 담겨 있다. 붓이 주요 필기도구인 시절에 마치 컴퓨터 글꼴 같은 글자다. 동그라미는 마치 컴퍼스로 그린 것처럼 완벽한 원이다. 붓글씨로 써서 나무에 새긴 글자다. 이러한 글꼴로 새 문자를 창제 반포한 것은 문자의 기적이고 혁명이었다. 아니 인류 지성사의 기적이고 혁명이었다. 이렇게 간결한 도형 원리 탓에 누구나 쉽게 쓰고 읽을 수 있는 문자가 되었다.

이러한 간결한 도형 덕에 자음자와 모음자를 합쳐 글자를 만드는 원리도 규칙적인 데다가 예술미도 듬뿍 묻어난다. 현대 글꼴로 본다면 ‘ㅗ’를 90도씩 틀면 ‘ㅏ ㅜ ㅓ’가 생성되면서 ‘노랑풍선’과 같은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한글 특성에 대해 ≪총균쇠≫라는 책으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 글자가 한눈에 구별되며 모음은 점과 수직선, 수평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자음은 조음 위치와 조음 방법을 정확히 본뜬 기하학적 기호로 이루어진다. 이들 자음과 모음은 사각의 공간 안에 잘 조합되어 한 음절로 표기할 수 있다. 그래서 28개의 글자만 기억하면 아주 빠른 속도로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 - 재러드 다이아몬드 ("Writing Right", 1994년 6월 "디스커버리" 15권 6호)

이러한 한글을 쉽게 빠르게 쓸지언정 거기에 담긴 이러한 위대한 문자 정신, 세종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말과 글의 품격을 위하여

한글이 본래 가지고 있는 고귀한 가치와는 달리 우리의 말글살이 참담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있다. 다음 광고는 유명 언론사가 서울시 후원으로 하는 행사인데 영어로 도배질하고 있다. 일부 표현은 아예 한글조차 거부하고 한글로 써도 ‘비추얼 레이스’처럼 정체불명의 외국어 표기 수단으로 둔갑하고 있다.

모국어 교육과 학교를 책임진 서울시 교육청과 교육부 광고지도 별다를 바가 없다. 서울시 교육청은 영어에도 없는 영어(언택트)를 쓰고 있고 교육부는 아예 영어에 한국어를 섞어 쓰는 수준이다. 초성자만 쓰는 방식은 길도우미(내비게이션)에 편리하지만 이렇게 무슨 뜻인지 모를 때는 한글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삶을 무조건 한글로 적는다고 우리 말과 글의 품격이 지켜지지 않는다. 다음 기사 일부 인용문은 최근에 모든 이의 공분을 사고 있는 벤츠 음주 사고 기사이다.

9일 인천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 55분께 인천시 중구 을왕동 한 편도 2차로에서 A(33·여)씨가 몰던 벤츠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오토바이와 충돌했다._ 최OO 기자, ≪연합뉴스≫ 2020.9.9.

이 기사로만 본다면 중앙선을 누가 넘었는지 알 수 없다. 보도 내용으로 보면 음주 벤츠가 넘어온 게 확실한데 이 문장만으로는 오토바이가 넘어온 것으로 착각을 준다. 실제 문장 하나가 범인을 바꿔놓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어지러운 말글살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댓글로 쏟아지고 있는 욕설과 분노로 일그러진 말들, 한글로 쓴 논문보다 영어로 쓴 논문을 100배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대학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섬세하게 발달한 말과 가장 쉽고 과학적인 문자, 한글을 쓰는 우리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글의 가치와 우리말의 품격은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 문화독립으로 목숨 걸고 지켜낸 조선어학회 말모이 운동처럼 새로운 문화독립 운동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언어는 소통이요 나눔이다. 언어는 배려이자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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