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Primo Levi, 낯선 이름이었다. 아우슈비츠를 떠올릴 때, 내게 연상되는 인물은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과 의미요법뿐이었다. 학부 때 과제물로 처음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프리모 레비의 저서들을 읽게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귀환한 지 얼마 안 된 1946년에 나온 책이다. 자신의 처참한 경험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열정적으로 썼다는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난 후 받은 충격과 부끄러움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리고는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그의 대표작들을 읽게 했다. ‘휴전’ ‘주기율표’ ‘멍키스패너’ ‘지금이 아니면 언제?’ ‘릴리트’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남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그는 끊임없이 ‘인간’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니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성찰하며 나름대로 대답하려고 방황하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 역시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인간’을 알고 있는가? 회의 懷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득한 옛날, 머나먼 땅끝에서 일어났던 비극의 현장 정도로만 막연히 각인되었던 아우슈비츠가 거대한 어둠과 함께 토네이도처럼 나를 휘감아 올리는 것만 같았다. 사실 fact이 아니라 흔히 피해자에게 나타나는 과장이라고 믿고 싶었을 만큼!

“우리 형제들은 하늘로 올라갔지.

소비부르와 트레블링카의 굴뚝을 타고, 허공에 무덤을 팠지.

우리 몇 사람만이 살아남아 있다네.

익사한 우리 민족의 명예를 위해, 복수와 증언을 위해.

내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마틴 폰타쉬라는 가공(?)의 인물을 빌어 토해내는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다. 뜬금없이 이 구절만 읽을 때는 밋밋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체험이 녹아든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에서 파르티잔 partisan의 활동기 記 문맥에서 대할 때는 처절한 통곡으로 달려든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이 저서를 읽으며 그러한 의문이 나만의 것만이 아님을 알았다. “라거(수용소)를 연구하는 많은 역사학자들은, 포로 생활 도중에 자살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에 동일하게 주목했다.”

그는 그러한 질문에 이렇게 응대한다. “첫째,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는 점이다.” 라거에 갇힌 사람은 그렇게까지 ‘동물화되었다’는 뜻이리라.

나는 이 대답 앞에서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리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인간을 ‘동물화한’ 그들 역시 인간이었다는 사실 앞에. 그리고 나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자문 自問할 수밖에 없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내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동물화된 인간’이었을까? 아니면 ‘동물화한 인간’이었을까? 나는 선 善이었을까, 악 惡이었을까?

‘아우슈비츠의 경험에 대한 철저한 사유와 성찰을 집대성한 역작’으로 평가되는 그의 생애 마지막 저작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참극 慘劇을 가해자와 피해자, 선인과 악인으로 깔끔하게(?) 구분하고 규정하는 세태 世態를 비판한다. “오늘날 라거의 역사를 읽는 (또는 쓰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을 나누고, 한쪽 편을 들고, 최후의 심판 일에 의로운 자들은 이쪽, 사악한 자들은 저쪽이라는 그리스도의 손짓을 되풀이하는 경향이(또는 실제적 욕구가) 있다…입소한 수용소에서…‘우리’라는 말은 경계를 잃었고, 대립하는 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경계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복잡한 경계선들, 곧 우리들 각자의 사이에 하나씩 놓인 수많은 경계선들을 볼 수 있었다”

레비는 이러한 상황을 ‘회색지대’라고 부른다. 가해자와 피해자만을 우리는 상상하지만, 자의 自意든 타의 他意든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사람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분에서조차 자의와 타의의 합성비 比의 다양성에 따라 회색지대도 명암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인간에 대한 그리고 그런 상황을 허락한 신에 대한 좌절이 그를 거의 무신론자로 그리고 스스로 생명을 끊음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현장이 오버랩된다. 십자가에 참혹하게 못 박힌 ‘점도 흠도 없으신 예수’와 ‘행악자인 강도’,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환호하는 사람들. 세상은 극한의 선인도 엄중한 악인도 아닌 회색인간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회색지대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분노하고 표적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레비는 말한다. 아우슈비츠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아니하는 까닭은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이 ‘회색지대’의 사람들이었던 까닭이라고! 그러나 레비의 어조 語調는 분노가 아니라 인간이 그러한 존재라는, 그럼에도 자신들은 악 惡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존재라는 체념 혹은 냉소로 느껴진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바울의 선언이 참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내가 죄인이라는 혹은 나도 죄인이라는 인식이 없이 어찌 예수를 만날 수 있으랴.

오늘의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의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교회는 ‘의인들의 공동체’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임을 부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의인들의 공동체’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억지일까?

우리는 용서받았기에 용서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회개했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회개했음을 인정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혹 회개했다는 고백이 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심판과 정죄는 우리의 몫이 아님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심판과 정죄의 권한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회개의 진실 여부를 판단할 분별력이 우리에게는 없음을 우리 모두 알기에. 혹 그로 말미암아 교회를 모르는 세상으로부터 함께 돌을 맞고 오물을 뒤집어쓰더라도.

또 한 사람, 유명인(?)이 신학교에 입학했다고 거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를 방송에 불러낸 교계 원로까지 거친 폭풍권에 있다. 세상보다 목사들이 더 분노한다. 그 심정은 이해한다. 목사되기 너무 쉬운 풍토라는 데도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돌을 들 수가 없다.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 없는 인생이 목사의 삶을 살고 있기에. 그리고 솔직하자! 교계가 이 모양인 것은 그런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점 없고 흠없는’ 양, 목사가 되고 성공(?)한 목사들인 우리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내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