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한 몸으로 교사 생활을 하던 나는 쓰러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고 교단을 떠나야 하는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거의 누워서 뒹굴며 나날을 보내는 투병생활을 하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 걸음마 연습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동네를 걷는 연습을 어느 정도 하다가 하루는 꽤 많이 걸을 수 있었다. 신나게 걷던 나는 다시 다리의 힘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마침 지나가던 경찰차가 내 앞에 세워졌고, 친절한 경찰분의 도움으로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때는 11시 무렵이었다. 동네 꼬마들이 나와 놀고 있다가 경찰차가 들어오니 모두 신기해하며 달려왔다. 경찰차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 눈에 다리를 저는 내가 내리는 모습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나를 놀려대었다. 비록 아이들의 손가락질이었지만 마음이 상했다.

‘나는 이제 아이들한테 놀림 받는 신세가 되었구나.’

그런데 우리 윗집에 살고 있던 세 살 꼬마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의 팔을 쓸어주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많이 아파? 많이 아파?”

그 말을 듣는 순간 앞서 상했던 나의 마음이 사르르 녹으면서 새로운 힘이 났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아, 사람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구나. 세 살 꼬마의 ‘많이 아파?’라는 네 글자의 말로도 사람의 마음이 위로를 받을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 계단을 기어올라오는데 갑자기 나에게 무릎이 있음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이 없었으면 지금 이렇게 기지도 못했을 텐데 무릎으로 길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은혜구나.’

무릎의 존재 가치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집에 무사히 돌아와 그 당시 베트남 선교를 가 있던 동기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공산권 나라에 가서 선교를 시작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동기 선교사님은 무릎 있음에 감사하는 나의 편지를 받고는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며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세 살 꼬마의 위로는 무릎의 감사로 이어졌고, 무릎의 감사는 다시 베트남 선교의 열정으로 이어지며 퍼져나갔다.

이렇게 투병생활을 하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후 나는 청소년 상담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학교를 떠나 있던 나는 그곳에서 학교를 떠난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고, 혹독한 삶을 살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TV에서 교사 임용고시를 본다는 공고를 보게 되어 원서를 내게 되었다. 14일이라는 아주 짧은 준비 시간만 남아 있었고,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어서 다양한 증세로 힘겹게 시험 준비를 했으나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부활하듯 살아나 다시 교단에 서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신규 교사로 임용되어 여자중학교로 부임하게 되었다.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는 선생님들의 애를 먹이는 학생들과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신규 교사가 온다고 하니 젊고 건강한 신규가 오는 줄 알고 선생님들이 특별히 힘든 아이들이 많은 학급의 담임 적합자로 여기고 나에게 그 학급을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나를 본 순간 자기네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고 크게 후회하였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학생들보다도 작았고, 몸도 약하여 힘들게 하는 아이들을 견디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이 아이들은 나를 가엾게 여기고 자기네가 학교에 오지 않으면 내가 병이라도 날까봐 걱정하며 학교에 꼬박꼬박 나와 주었고, 행여 자기네가 말썽을 부리면 내가 쓰려질까봐 나를 위해 학교생활을 착실하게 해주었다. 나는 이렇게 학생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고, 소위 말하는 학교 부적응 학생들의 속사정들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학교를 떠나, 학교를 떠난 아이들을 만나 알게 되었던 그들의 어두운 세계는 나로 하여금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 다니도록 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게 하였다. 해를 거듭하며 이렇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애쓴 노력들은 우연히 교육부에 알려지게 되었고, 교실 수업이 어려운 부적응 학생들을 위해 특별 교육을 하는 ‘희망이 싹트는 교실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보내지 않고 그들을 돌보는 분위기도 마련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바로 지금의 위프로젝트이다.

교육부에서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상담실을 전국 최초의 위클래스로 리모델링 하여 위클래스 모델이 되게 해주었다. 학교에는 위클래스가, 교육청에는 위센터가 마련되어 학교를 떠나는 수만 명(그 당시 7만 여명)의 아이들을 살리는 위기 극복 프로젝트가 가동된 것이다. 그러다 아예 이들을 위한 공립 대안학교 개념의 위스쿨까지 설립이 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은여울중학교는 충북의 위스쿨이다.

한번은 내가 상담하던 학생 중 한 여학생이 선배들에게 불려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있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와서 그 소식을 전해주었고, 나는 바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선배들에게 심한 욕설을 들으며 울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 옆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무릎을 꿇자 선배들은 당황을 했다. 그 아이들 역시 나의 상담 고객이었기에 나는 그 아이들과 이미 가까운 사이였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거야. 존중받지 않아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희가 무릎을 꿇릴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렇게 말하자 선배 아이 중 하나가 얼른 나를 일으키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학급을 어렵게 하다 학교를 떠날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학급 아이들 앞에서 그 아이와 함께 무릎을 꿇었고, 반복되는 잘못으로 학교를 그만 두게 될 처지에 놓은 아이를 위해 전교생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있음에 감사하던 기도는 이렇게 위기 아이들을 구하는 기적들을 낳게 하였다.

위기 아이들과 뒤엉켜 생활하다 보니 별의별 사연들을 다 접하게 되었고, 그 사연들은 바로 이들을 살려내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 기적의 씨앗들을 심게 하였다. 나는 그 씨앗을 무릎으로 심었다. 현재 전국에 6,931개의 위클래스가 설치되어 있다.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작은 활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전국의 아이들을 살리는 씨앗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햇순 301호.

그동안 햇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씨앗을 심어주시고 햇순이 싹트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크게도 일하시지만 이렇게 작은 이의 무릎, 작은 책자 햇순을 통해 생명의 빛을 발하고 계신다. 아슬아슬 살아남은 나의 인생처럼 햇순에도 비바람이 불 때도 있고, 뿌리가 흔들리는 시련이 있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이 계시니까 오늘도 우리는 감사하며 살 수 있다. 햇순이 301호까지 묵묵히 걸어오게 됨을 감사하며 축하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