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을 맞이할 때면 누구나 카이로스 Kairos를 느끼게 됩니다. 새해를 맞이하거나 입학식을 하거나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그런 경험을 합니다. 평소 무감동, 무감각, 무신경으로 살아가던 사람도 카이로스를 느끼면 달라집니다. 요즘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합니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고 인수위원회가 출범하고 새 정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실망과 좌절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적합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명된 장관들을 언론이 검증하기 시작하고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자, 지지했던 사람들조차도 당혹과 좌절을 느끼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사생활이 알려지지 않은 채 공인으로 활동하는 모습만 봐온 처지에서는 놀라움과 실망을 금할 수 없게 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민주화나 산업화에 공헌한 사람들, 환경 보전과 사회 정의를 위해 공헌한 인사들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걸어온 길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상대적인 빈곤과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역대 정부에서도 인사청문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탄로되기 전에는 모두 자기분야에서 인정받고 지도력을 발휘했던 인사들입니다. 그런데 나타나는 문제의 유형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부정직과 기만에 대해 타성적으로 허용치가 그동안 너무 높았다는 것과, 체면의식은 높은 데 비해 죄의식의 수준은 무신경할 정도로 낮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사적인 일에서는 윤리 도덕을 준엄하게 말하면서도 공적이고 사회적인 일에서는 무감감할 정도로 허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 윤리에 취약하고 공양심 公良心이 무딘 탓입니다.

공직에 임명될 가능성이 가시권 안에 들어오면 그제서야 국적이나 세무 실적을 정리하고, 이력서를 확인하고 정정하는 일들을 합니다. 사필귀정으로 그런 과정이 드러나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해명하고 변명하기 바쁩니다. 과연 언제까지 우리 국민이 장관 후보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지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되짚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동안 물질주의와 경제 발전을 강조하며, ‘돈이면 다’인 것처럼 정신없이 달려왔던 결과를 뼈아프게 성찰하고 공양심을 살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지식 교육과 기술 교육에는 많은 투자를 해왔으나 인성교육은 너무나 부실했습니다. 교회는 온 사회와 더불어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공직에 나선 사람들이 평소 공직자가 되기 위한 교육,훈련과는 거리가 멀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언제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더라도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준비된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등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시민들이 인성 교육으로 공양심을 키워서 사회의 탄탄한 토대를 이루고,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그룹을 이루어야 합니다.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여 사회와 문화를 의식하고 공동체 정신을 키운 사람이 공직을 맡아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지식과 기술과 전문성 위에 투철한 공양심을 갖추도록 교육과 훈련을 통해 육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산의 목민심서가 가리켜 보이는 봉공 奉公과 애민 愛民이 새삼 가슴을 칩니다.

인류를 위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열심을 부릴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야 공양심이 우선됩니다. 남극탐험가 섀클턴이 그의 대원들과 그랬듯이, 협력과 공동체 정신을 길러야만 성숙한 인간, 참다운 지도자가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공양심을 가슴 깊이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정치지도자를 훈련시킬 교육원이 있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