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 불길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우려했던 게 바로 국가주의입니다. 지난 2013년 7월 그가 대통령이 되고서 처음 휴가지인 저도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저도의 추억’을 보고 쓴 필자의 칼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한 나라의 통수권자입니다. 자신이 겪은 통한의 기억 못지않게, 아버지로 인해 고문을 당하고, 죽고, 고통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휴가지에서 돌아온 그는 아버지와 인연이 깊은 이들을 청와대 주요 자리에 앉혔습니다. … 아버지의 열렬한 추종자들과는 공감하면서, 아버지로 인해 고통을 겪은 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자기 가족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코 용서하거나 수용하지 않겠다는 신호로도 읽을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저 옛날 다윗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같은 철천지원수의 죽음에 대해서까지 그를 추종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생각하여 조가를 지어 부르며 함께 슬퍼했던 사람입니다(삼하 1:17-27). 비록 반역을 도모하기는 했지만, 참혹하게 죽은 아들로 인한 슬픔을 억제하고,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했던 지도자입니다. 통일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다윗의 품새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저도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메시지를 보낸 대통령이 과연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내고, 멀고 험한 통일 기반을 닦을 수 있을지. 우리는 그가 자신의 가족사와 국가주의에 포박되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하태영, ‘저도의 추억’ [햇순], 2013년 9월호)

박근혜 대통령은 어리석은가? 최근 이상돈 교수의 칼럼은 이를 되새겨보게 합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상황을 거꾸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박 대통령이 부친시절에 있었던 인권유린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하고 어두운 유산을 치유하는 일을 했다면 부친의 과거사는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어둠 속에 잠자고 있던 과거사를 대명천지로 끌어내고 말았다. 일반 국민은 알지도 못하고 구태여 알 필요도 없었던 일들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 형상이다.”(이상돈, ‘역사의 수렁에 빠지다’, 경향, 2015.10.26).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은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역사 길들이기’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익숙한 길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한 길이 되고, 넓은 길이 되고, 유일한 길이 되고, 마침내 정도가 됩니다. 그가 ‘올바른’ 역사를 말할 때는 그걸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와 함께 ‘올바른’ 역사를 희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뉴라이트 계열 사람들이 주종을 이루지만 실상은 그 뿌리가 여간 단단한 게 아닙니다. 조호연의 칼럼은 이를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고위관료와 새누리당, 재벌, 보수층에는 친일파 후손이 많다. 그들에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조상의 친일 행각을 지울 절호의 기회이다. 친일파 후손이라는 일생의 멍에를 벗고 팔다리 쭉 펴고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국정화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들이 반민주, 반헌법, 반역사, 불법, 다수 국민 반대, 국정 운영 등 어떤 것이든 희생시켜도 좋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개인의 불편한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조호연,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 경향의 눈, 2015.11.13.).

친일했던 이들과 그 후손들이 친일을 자랑하는 일은 없습니다. 스스로도 친일에 대해 도덕적 파산선고를 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신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로 자신들의 행적을 옹호하려 하지만 옹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저들에게 가장 안전한 서식처는 바로 ‘국가’입니다. 국가를 위해 했다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행위는 완벽하게 위장되고, 떳떳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국가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사 길들이기가 필수입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다음은 헌법 개정이고. 독재도 친일도 사상검증도 인권유린도 파시즘도 부정부패도 헌법유린도 모두 나라를 위한 일로 둔갑시킬 국가주의 망령이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