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15

 

 

 

 

 

 

 

 

 

 

 

 

  오늘을 바라보며

 

몸을 만나다

 

 

 

 

 

 

 

 

 

 

 





안 지 성



목사
새터교회
inteli1002@hanmail.net






 


요즘 내가 공들여 만나는 것은 내 몸이다. 우연한 기회에 ‘요가 치료’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그 매력이 만만치 않다. 한 시간 동안 누워서 몸의 감각을 느끼며 치료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한 시간이 마치 마술처럼 내게 놀라운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나는 몸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얼굴이 못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히 여성에게 예쁜 얼굴이 중요한 사회에서, 얼굴이 못생긴 나는 마치 천벌을 받은 존재 같았다. 마찬가지로 몸도 부끄러웠다. 뭔가 요구되는 기준에 항상 못 미친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운동이란 운동은 죄다 못했다. 뜀틀, 피구, 배구, 배드민턴, 스케이트, 수영에 이르기까지 뭔가 하기만 하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그렇게 많았다.

몸은 나에게 부끄러움과 열등감의 근원이었다. 그런 내 몸을 나이 마흔다섯이 넘은 이제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있다. 그동안 나에게 몸은 다른 사람 눈에 비춰지고 평가받는 어떤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 그들의 평가가 나의 몸을 만나는 데 무엇보다 중요했다.

요즘 시작한 ‘요가 치료’ 시간에는 일단 눈을 가리고 누워서 몸을 만난다. 눈을 가린다. 그게 참 좋다. 눈을 가리면 눈으로 보는 세계의 문이 닫힌다. 대신 귀로 듣는 세계, 몸으로 느끼는 세계의 문이 열린다. 내 몸을, 눈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몸으로 몸을 느낀다. 그게 참 좋다.

몸으로 느끼는 몸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 번째로 몸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내 몸에 쌓인 감정이었다. 몸은 미처 내가 받아들이지도, 풀어주지도 못한 감정, 그래서 밀쳐두었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마음과 몸은 하나였다. 마음은 그대로 몸에 새겨져서 간직되고 있었다. 갑자기 등짝이 뜨거워진다거나 오른쪽 옆구리가 시리다거나 어깨가 말도 못하게 아파진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몸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등에 새겨진 두려움, 오른쪽 옆구리가 품은 죄책감, 어깨가 뿜어내는 분노를 몸은 어떤 말보다 정직하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감정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데에 참 인색한 나도 만났다. 아마 그때도 그래서 제대로 만나지 않고 꽁꽁 묻어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라지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내 몸이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몸이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는 생명의 신비하고 위대한 힘이었다. 나에게는 그 힘이 배꼽에서 느껴졌다. 몸의 곳곳이 아프다고 아우성이어도 배꼽은 늘 편안한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화로운 중심은 한시도 쉬지 않고 꼬물대고, 꼼지락거리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피곤한 날에도, 삶이 벅차다고 투덜대던 날에도, 화가 나는 날에도, 절망하던 날에도, 내 배꼽은, 변함없이 평화롭게 꼬물거리고 있었다. 생명은 무엇보다 위대하고 신비한 힘이었다. 그 무엇도 생명의 놀라운 힘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명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돌보심 속에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마지막으로 내 몸은 노래와 춤을 내게 선물했다. 몸의 느낌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에게 필요한 움직임이 내 몸에서 시작된다. 때로 그것은 노래가 되기도 했고 근사한 춤이 되기도 했다. 가슴은 답답하고 목이 칼칼해서 견디기 어렵던 어느 날, 사무치게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가사는 없는 노래였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노래는 사랑노래였다. 특정한 누구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향한 내 마음 깊은 곳의 사랑이 노래로 표현되고 있었다. 조금 놀랐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 그동안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서 생긴 울화병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해서 생긴 아픔이었다니......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나도 사랑인 모양이다. 내 몸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었다.

밥 먹으러 가야겠다. 사랑하는 내 몸이 배고프다고 하신다. 왼쪽 가슴이 아파온다. 뭔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사랑이 또 있는 모양이다. 몸으로 몸을 느낀다. 몸으로 몸을 모신다. 생명으로 생명을 느낀다. 사랑으로 사랑을 모신다. 몸 하나로 이토록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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