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그렇게 극성을 부리더니만, 자연의 시간을 속일 수는 없는 듯합니다. 입추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가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위가 아직 그렇게 기승을 부려도 이제 곧 밀려오는 가을의 기운을 어쩌지 못하고 물러가겠지요. 어떤 존재가, 어떤 지혜가 이렇게 정교하게 자연과 우주의 변화를 조정하고 있을까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신비이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때가 차면 이렇게 이루어질 것을 무얼 그리 조급하게 살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라기보다는 맡기려합니다. 더 큰 지혜에, 주님의 뜻과 손길에 나를 맡기려합니다.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내 뜻을 이루려고 주님의 도우심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지혜와 신비에 그저 맡기고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맡기고 내려놓으며 ‘걱정하지 않고’(마6:25이하) 시편23편의 시인처럼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느긋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거꾸로 살지 않았을까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온갖 소중한 가치와 명분과 아름다운 꿈을 위해서, 또 그것을 내 두 손에 확실하게 쥐기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거나 뒤로 밀쳐내지 않았던가요? 더 이상 내 에고에 붙들려 사라져버릴 헛된 욕망을 위해서 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그분께서 이끄시는 대로 흘러가 보려합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거짓 에고 안에 깊이 묻혀 숨겨져 있는 보물, ‘참 나’를 찾는 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히11:1-3). 저자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핵심을 저는 ‘참 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참 나’를 또한 ‘신적 성품’(벧후1:4)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길,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길로 저를 부르신다고 믿습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든 그것이 나를 찾는 참된 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수련이어도 좋고, 여행이어도 좋고, 공부라도 좋고, 소박한 노동이나 목회라도 좋습니다. 주님의 이끄심이라는 판단이 되면, 그 길은 저의 꿈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참 나를 발견하고 신적 성품을 회복하는 동화와 전설과도 같은 꿈을 실현하는 길 말입니다.

가을 문턱에 서서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지금 무엇이 여러분을 붙들고 있습니까? 생각이든, 감정이든, 힘이든, 무엇이든지 나를 붙들고 조정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에니어그램에서는 그것을 격정 passion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 에너지에 붙들려 있기에 나는 자유를 빼앗겨 버린 종이나 기계(로봇)와도 같습니다. 분노, 자랑, 기만, 시기, 인색, 공포, 탐닉, 정욕, 나태의 에너지에 빠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자기 Self를 잃어버린 자아 egos의 삶입니다. 격정에서 벗어나 자기를 되찾고 건강한 자아 Ego의 모습을 형성할 때, 우리는 격정의 에너지를 평정, 겸손, 신실, 침착, 초연, 용기, 맑은 정신, 소박, 근면의 열정의 에너지로 바꾸어낼 수 있습니다.

격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순합니다. 주먹을 펴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격정에 빠지고 붙들렸다고 표현하지만, 실상은 내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내려놓으면 됩니다. 격정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깨어 관찰하고 내려놓는 수련을 통해, 점점 일상의 모든 차원에서, 붙들려 있는 기계의 상태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릅니다. 그것이 깨어있음이요, 자유이며, ‘참 나’의 삶입니다(Life is only real, when I-Am:구르지에프). 이 여행을 함께 떠나보면 어떨까요? 더 이상 에고의 ‘거짓 나’의 삶에서 벗어나 주님의 창조의 목적이 실현되는 ‘참 나’를 찾아 가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과거와 미래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잃어버린 나를 되찾아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말입니다. 조용필의 <이제 그랬으면 좋겠네>를 이 여행의 길벗 음악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