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 년 전입니다. 영국의 BBC방송은 <번영의 역설>이라는 제하에 ‘향후 10년 뒤 우리의 가정들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지겠지만, 삶의 질(행복지수)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이 붕괴되면서 인간은 점점 고독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인 1가구인 독신가정이 지금보다 배나 증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스트레스로 인한 마약과 알콜 중독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의 축적은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10배나 더 많아서 말 그대로 20대 80의 사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정보 기술의 혁명으로 개개인의 능력 차가 더 벌어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오늘 이 보고서는 눈앞에 닥친 현실에서 실감합니다. 인간은 원하는 물질적 풍요를 성취하고서도 인간 자신은 불행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합니다. 하나는 물질문명의 발달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인간 자신의 문제를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찾아오는 가정해체로 인해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어떤 답을 가지고 있을까? 성서에서 가정은 ‘사회조직’으로 이해되기 전에, 인류 복지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사회조직’으로서의 가정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로서의 가정’은 거시적으로 보면 새로운 가정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가정의 해체로 인한 고통을 겪을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정의 ‘구조’가 아니라 ‘밀도’ 즉 사랑하고, 의존하고, 믿음으로 질서 지운 가정의 밀도가 깨지는데서 오는 고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가정의 형식이 아니라 밀도입니다. 대가족이던, 핵가족이던, 다문화 가정이던, 동성애 가정이던 그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과 믿음과 상호존중입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혈연중심과 물질주의입니다. 혈연중심과 물질주의는 세상을 풍요롭게 해야 할 에너지를 경박하게 함으로서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가정을 스스로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경박한 사랑은 가정을 분해시키고, 세상을 척박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이러든 저러든 대가족은 이미 붕괴되었고, 핵가족 역시 붕괴되고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개체중심의 가정은 핵가족이 파편화되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개체중심의 가정은 정서적 안정의 불확실성이라는 새로운 암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개체중심의 가정은 상호의존적인 관계로부터 독립하려는 자의식에서 선택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자본주의의 혹독한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요인이 어디에 있던 우리 사회는 지금 고독한 인간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고독이 증가하면 사람들은 더욱 강렬한 정서적 의존을 갈망합니다. 그리하여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들이 생성됩니다. 소위 동성끼리의 가정이라는 게 그런 유형입니다. 이게 좋으냐 나쁘냐 하는 가치 판단 이전에, 사람끼리 정서적 안정과 사랑을 나눠야 할 사회적 필요가 증가합니다. 비록 피붙이는 아닐지라도 넓은 의미에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닌 훌륭한 유산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붙이와 인연이 끊긴 이들이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가족의 유대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란 실질적인 가정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믿음의 공동체(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고독한 이들을 형제자매로 영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1인 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시대에 고독한 이들을 돌봐야 할 일이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과제입니다. 성장이라는 규모 중심의 교회가 아닌 형제자매로서의 교회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