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입니다. 마을 인근에서 온갖 질병에 효험이 있는 약수가 터졌다며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그럴듯한 입소문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던 것입니다. 그처럼 허황된 소문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는 전쟁 뒤끝이라, 갖가지 질병이 만연했음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전하는 베데스다 못 이야기는 이보다 더 시사적입니다(요 5:2-18).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베데스다라는 꽤 큰 못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라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비인간적입니다. 그 많은 병자들이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물이 움직이자마자 서로 먼저 뛰어들고자 사투하는 장면은 아비귀환이 따로 없지 싶습니다. 그러니 38년 된 병자의 하소연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도무지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그래도 기회를 얻을까 해서 못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가당치도 않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 이야기를 했을 때는 분명 숨은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적이 아니고는 살 길이 없는 이들, 그럼에도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도움은 주지 않고, 계율만을 요구하는 당시 종교의 가증스러움을 고발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곳에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음에도 예수께서 유독 38년 된 병자만을 지목한 이유 역시 궁금합니다. 가장 심한 병자에게 연민을 느끼신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병든 사람의 처지는 모두가 화급하고 가련합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누워 있는 병자 모두를 고쳐주시면 더 좋았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을 때 38년 된 병자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삶의 극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서로 먼저 살겠다고 아비귀환으로 다투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대답입니다. 기회는 제한되어 있고, 절박한 사람은 많은 현실에서 강자와 약자의 처지는 이곳에서도 다를 바 없습니다. 요한은 이들을 이렇게 내몰고 있는 기득권자들을 규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몰린 사람들이 내몬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음도 고발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자기들을 세상 밖으로 내몬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38년 된 병자는 벌써 자리를 털고 일어섰을지도 모릅니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의 처신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자기 병을 고쳐 준 사람이 예수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유대인들에게 달려가서 그가 누구인지를 고해바치고 있습니다. 비루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질병을 고침 받았음에도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는 은혜 아래 있기보다 죄 아래 있는 게 훨씬 더 편안한 사람입니다.

이 비루하고 못난 인간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죄 사함 받아 영혼이 구원받는 데는 관심이 없고, 단지 일상의 도움에만 매달린다면 말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는 마치 전설 속 얘기처럼 들립니다. 삶의 궁극적인 고뇌보다는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욕망으로 펄펄 끓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겪는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일신의 안일만을 바라는 신앙이라면 수천수만이 모인 뜨거운 예배가 베데스다 못 가의 아비규환과 뭐가 다를까요?

구원은 단지 일상의 생활 조건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성소에 들어갈”(히 10:19)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의 삶은 예수를 믿기 전의 삶과는 달라야 합니다. 나 살겠다고 나보다 연약한 자를 밀쳐내고 억압하는 사람이나, 그런 나라는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사 47:6-7). 그리스도인은 일신의 복을 누리는 것보다 영혼이 건강한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