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주인공인 '인자人子'가 가는 곳마다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자기 자신을 열고,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세상을 뒤바꾸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사건을 보고, 겪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었다. 해서 교회는 이런 사건의 상징이요, 발상지가 되었다. 그들은 '남이 닦아 놓은 터전에 집을 짓거나, 기존의 건물 위에 층수만 올리는 일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롬.15:20). 그런 면에서 나는 교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넘어서는 '사건 Upside-down Event' 보기를 늘 갈망한다.

지난 12월 18일 이 날은, 경사가 가파른 높은 산이 위협적으로 마주 보고 있는 골짜기 끝에 있는 폐광촌의 한 작은 교회에서 바로 그 '갈망하던 사건'을 본 날이다. 허물어져가는 빈집이 더 많은 골짜기 개울가에 있는 이 교회에는 교인이라야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열댓 명 정도가 전부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도시에 나가 일자리를 구하기에는 너무 늙고 진폐증의 흔적에 시달리는, 전직 광부들과 그들의 아내들뿐인데 이들 속에서 큰 사건(행사가 아니라)이 일어났다.

석탄산업이 막을 내린 후, 빈 마을에, 빈 집처럼 허전하게 남아 있던 교회에 4,5년 전쯤부터 도시에서 자녀들과 함께 살던 할머니들이 듬성듬성 다녀가기 시작했다. 농촌처럼 대대로 살아온 조상의 묘소도, 세대를 넘어 이웃사촌이라 할 사람들도 없는 곳에 찾아 온 할머니들을 맞아주는 사람은 오로지 목사님 내외 뿐. 친정어머니 반기듯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택에서 2-3일 묵고 떠날 때쯤에야 삶의 방식이 아주 다른 며느리(아들) 집에 얹혀(?) 살면서 겪는 아픔을 털어놓곤 했다.

그들이 아쉬운 발걸음을 떼놓으면서 흘리고 가는 말은 한결같이 “아이고, 지난 사나흘 같이만 살았으면 더 없이 좋을 텐데…” 였단다. 그런 할머니들의 짧은 하소연이 떠오를 때마다 목사 내외는 소문으로 들었던, 고부간의 갈등에 시달리는 며느리들 혹은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들을 위한 '여성쉼터'가 떠올랐다.

그 때부터 길운교회가 떠나간 사람들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안식을 제공할 수는 없을까를 놓고 기도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도 제목은 이른 바 도시에서 소외된 <할머니 할아버지의 쉼터 만들기!> 소문이 점차 퍼지면서 '사건' 음모에 가담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 폐광촌에, 도시에 산발적으로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그 같은 사람들 간에 이루어진 만남의 사건이 새로운 교회를 이룩한 것이다.

교파는 다르지만 광산이 한창이던 시절 잠시 출석한 적이 있는 작은 교회의 꿈에 마음이 동한 서울의 한 교인이 전세금을 통째로 헐고, 고향이라 해도 탄가루에 뒤덮인 검은 추억 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고향을 볼 것 있는 동네로 만들기’ 위해 적금을 붓고, ‘노인들의 쉼터’에 자신의 노부모가 필요할 때는 언제나 주인 행세를 하며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며느리들이 살림비용을 덜어내고, 폐광촌의 작은 교회에서 떠날 날만을 고대하던 젊은 전도사가 텅 빈 마을에 교회가 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보았다면서 한달 생활비를 몽땅 들고 오고, 20여년이나 된 낡은 교회를 놔두고 마당에 수입도 기대할 수 없는 노인들의 쉼터를 짓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워 공사를 맡은 이가 건축계약가의 20%를 되돌려주고, 신혼살림살이 장만의 꿈을 못 버린 채 50줄에 들어선 목사 아내가 결혼 전 장만했던 도시의 작은 주택을 팔아 눈물과 함께 내놓고…….이런 염원들이 '사건화'한 것을 두고 어찌 건축이라, 봉헌 행사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위대한 사건이었다. 그날, 봉헌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온 이들은 저마다 이 위대한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지만 '사건현장'을 본 것만도 감사히 여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2리 330 길운교회 Tel : 033) 378-8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