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문관의 지휘 아래 이교도를 화형 시키는 불길이 내뿜는 연기로 광장의 하늘이 자욱하던 어느 날, 스페인 세빌리아 성당 앞 광장에 그리스도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말없이 군중 속을 걸으며 어릴 때부터 맹인인 노인을 눈뜨게 하고, 죽은 소녀를 살려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이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환호하며 그의 발이 닿은 곳에 입 맞추고, 그의 발 앞에 꽃잎을 던지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성당 발코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대심문관은 손을 까딱거리며 호위병들에게 그리스도를 체포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호위병들이 그리스도를 체포하기 위해 광장에 나타나자 순간 광장에는 죽음과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고 호위병들은 서둘러 그리스도를 체포한 후 사라졌습니다.

그날 깊은 밤중에 대심문관은 감옥으로 그리스도를 찾아와 “그대가 정말 그리스도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땅의 빵’과 ‘노예의 환희’와 ‘세속적 행복’이지만 당신은 이것을 주지 않았고(마 4:1-11) 자신들은 주었는데, 또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교회를 세우고, 구원의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이 숭고한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제거되어야 하고, 그리스도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으니 방해하지 말고, 광장을 떠나라고 요청합니다. 대심문관은 스스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어제 감리회 입법의회에 다녀왔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 종교개혁의 달인 10월, 그것도 종교개혁주일 직전에 열리는 입법의회이기에 역사상 가장 타락하고 부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한 작은 몸부림이라도 있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철없는 기대였습니다. 입법의회는 감리회 역사상 가장 저급하고 반개혁적인 회의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성역이라도 되는 양 회의장의 일반인 출입은 금지됐습니다. 사람들은 감리회의 운명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듯 거드름을 피우며 회의장을 거닐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 이슬람, 국가 법정에 고소하는 자를 출교에 처하는 일 등 민감하고 위험한 사항들에게 대해서 심도 있는 토론도 없이 찬성 버튼을 마구 눌러댔습니다. 반면 감리회 개혁을 위해 회원들이 발의한 법률 개정안은 본회의에 상정도 하지 않고 폐기하는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그들을 지켜보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이 생각났습니다. 대심문관이 그랬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정녕 감리회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대심문관이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죽였듯이 그들 역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죽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박경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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