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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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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바라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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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배우는 시간은 90분이지만, 개인연습을 더하면 저마다 적어도 몇 시간씩 기타를 가지고 놀고 있다. 열심인 사람은 대여섯 시간 이상 기타를 친구 삼고 있다. 기타소리 동아리는 날이 갈수록 흥을 더해가고 있고,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강좌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처음엔 소음으로 들리던 기타소리가 이젠 조금씩 실력이 진일보하여 기본 코드를 익히며 ‘섬 집 아기, 에델바이스, 연가’와 같은 쉬운 곡들을 씩씩하게 연주하고 있다. 주변에 기타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달려가, 기타를 잡고서 보란 듯이 기타 줄을 뜯곤 한다. 그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는 모임을 주선한 책임감을 가지고 강좌의 자리에 함께 했다. 진짜 속마음은 이 기회를 빌려서 악기 하나쯤 제대로 다루고 싶은 욕심이었다. 이제껏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기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고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내 인생에서 언제 기타를 배울 기회가 오겠는가 하는 절박함도 있었다. 이는 함께하는 50대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평소 악기와는 그리 친하지 않았다. 혼자서 심심풀이로 하모니카를 가지고서 찬송가 몇 곡을 연주하는 정도가 다였다. 40대 중반 부교역자로 교회를 섬기던 때 교회에 첼리스트 자매님이 계셔서, 큰 맘 먹고 악기를 구입하였고, 그분에게서 3개월 배운 적이 있었다. 3개월은 잘 지나왔지만 배우는 게 점점 힘들게 느껴졌고, 도약해야 하는 한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결국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포기했다.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다. 그나마 집안 한쪽 구석에 장식품으로 보관해두었던 그 악기를 둘째아이가 가지고 놀았고 그의 소중한 악기가 된 게 감사하다. 나는 나서 청소년 시절까지 아주 깊은 산골 농촌에서 지냈다. 지금도 고향엔 부모님이 계시고, 50여 년 전의 논밭을 여전히 가꾸고 계신다. 고향 풍경도 어릴 적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절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추억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길어야 한 이틀 짧은 기간을 머물지만, 마음도 몸도 치유되고 회복되어 돌아오는 신비한 경험을 하곤 한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고향의 품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한다. 농촌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남이 갖지 못한 소중한 것들을 참 많이 누렸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악 미술 영화와 같은 예술을 직접 접하고 배울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내 안에 숨은 예술본능을 모르고 꼭 누른 채로 살았다. 나에겐 예술적 재능이 부족하다, 라고 생각했다. 뒤늦게 내가 예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사람이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예술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예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느님이 예술가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술인생을 살도록 당신 모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늦깎이로 왜 기타를 배우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요,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기타를 배우면서 내 안에서 작은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본다. 삶의 여백과 리듬이요, 여유와 평화다. 혼자 조용히 연주하며 노래하는 즐거움이 있다. 개인악기를 장만하지는 못했지만 교회악기로 그날그날 짬짬이 30, 40분씩 연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안에 손님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타에 취하는 나를 보면서 웃음이 난다. 악기를 잡은 새내기이지만 이 또한 예술인생의 소중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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