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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나무 가지에
개가 매달렸다
파랗게 눈을 부릅뜰 법도 한데
소리도 없이
몇 번 허공을 향해
앞발을 버둥대다가
축 늘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
죽을 힘으로 떠올린 고향집과 늙은 어미의 눈동자,
그가 마지막으로 버티고 싶었던
마른 풀 위에
뜨거운 배설물과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잠시 뒤 늙은 개 두 마리가
히히덕거리며 다가와
짚단을 꼬리쯤에 쌓아 놓고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제목이 ‘개’였어요. 국어 선생님은 가끔, 그것도 느닷없이 칠판에 시를 써 놓고 읽어 주시곤 했는데, 그날은 목수 시인 유용주의 시라며 이 시를 써 놓았어요.
그러고는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창작과 비평사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면서 책 뒤에 이렇게 써놓았는데, 우리가 지금처럼 국어시간에 이 시를 칠판에 써 놓고 읽는 것이 과연 ‘재사용’인가, 아닌가. 재사용이라면 저작권자인 유용주 시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출판사의 동의도 얻어야 하는데, 그보다 우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서 지금 우리가 하려는, 아니 하는 짓이 재사용인가부터 알아봐야지 않겠느냐. 그보다 더 앞서, 여기 이렇게 이 시를 칠판에 써 놓고 여러분에게 어찌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게 옳은 순선지 그른 일인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이렇게 농같이, 또는 진담같이 그날 반쯤 웃으면서, 개는 대개 삼복 여름에, 백중날 같은 때 패서 잡아먹는데, 이 시에서는 겨울이라고, 그곳도 밤나무에 목을 매달아 잡은 모양이라고, 그러시면서 또 느닷없이 소설가 김성동이 ‘염소’라는 동화를 썼는데, 그 염소가 찌르는 칼에 숨을 끊어지고 떠올리는 고향 하늘과 동무들과 어미의 눈동자에 관하여 말씀하시고는, 여기서 ‘히히덕거리며 다가와 이미 숨 끊긴 개 그슬리기 위해 짚불을 피우는 늙은 두 마리의 개’는 정작 개가 아니라고……, 그러자 우리들 한 목소리로, 교실 창문이 흔들릴 만큼 큰 소리로 “우리도 그런 정도는 안다구요!”라고 소리 지르고, 선생님도 맞장구로 “그렁게 내 강아지덜이징!” 대꾸하시며 활짝 웃는 눈꼬리에 눈물이 보였어요. 그날의 그 ‘개’가 생각나요.

갈, 길, 길, 갈매기 소리.
뒷문 밖으로 다시 눈보라, 폭풍우, 용오름 현상, 구름기둥 보이다가 다시 짙푸른 바다.
빤히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안마당 서성이는 어미 개.
동네 사람들 나타나 강아지 한 마리씩 안고 무대 밖으로 퇴장하며 한마디씩!

동네사람 갑: 가출이 잦아 쌓더만 기어코 일을 저질렀고마잉.
동네사람 을: 제니스 라디오 싣고 올 때 알아봤지라.
동네사람 병: 검둥이 손주 보지 않응게 다행이지.
동네사람 정: 그렇다고 연탄불 펴 놓고 목숨을 끊어? 목심은 하늘님이 주신 것인디.
동네사람 갑: 딸내미 양색시 됐다는 소문 듣고 그냥 참을 수 있겄남.
동네사람 을: 그야말로 기구헌 팔자 아닝감.
동네사람 병: 영감님 만나 저 세상에서나, 잘 있어야지.
동네사람 정: 자살하는 건 죄짓는 것인디…….
동네사람 갑: 발바닥 검고 배 검고 코 검은 것이 진짜 진도갠디.
동네사람 을: 요놈이 눈은 못 떴지만 젤루다 똘돌해 뵈네.
동네사람 병: 참말 잘 됐지 뭐. 우리 대장 헌티 선물헌다고 별렀넌디.
동네사람 정: 날랑 저 에미 개나 맡아야 쓰겄어.
다시 갈매기 소리 갈, 갈, 갈…….
파도소리,
뱃고동 소리,
상여 소리,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어허,
북망산천 어디멘고 어허어허…….
다시 뱃고동 소리, 무대에 불이 꺼지고
버스 떠나는 소리, 기차 소리.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서 성조기가 올라가는 국기 게양대.
철조망 안에 미군 부대 막사가 보인다.(다음호에 계속)